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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통령이 된다는 것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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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7 11:00:00 수정 : 2024-05-07 15: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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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기도 전에 묻히고 싶지 않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부통령 출마 제안을 받은 어느 상원의원이 이를 거절하며 했다는 말이다.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 그 밑에서 4년간 부통령을 지낸 휴버트 험프리(1965∼1969년 재임)는 “눈보라 속에서 옷을 벗고 떨고 있어도 아무도 성냥불 하나 갖다 주지 않는 자리가 부통령직”이라고 한탄했다. 미국 정치에서 부통령이 차지하는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인자’ 부통령이 되면 ‘1인자’ 대통령에 가려져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공직자들은 오로지 대통령만 바라보고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쓸 뿐 부통령 따위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해리스는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흑인 부통령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물론 모든 부통령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초대 존 애덤스(1789∼1797년 재임)부터 현 카멀라 해리스(2021년 취임)까지 역대 49명의 부통령 가운데 9명이 임기 중 대통령에 올랐다. 대통령의 유고(有故) 시에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하도록 한 미국 헌법 규정 때문이다. 49명 중 6명은 부통령을 마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역임하고 이후 202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조 바이든 현 대통령(2021년 취임)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통령이 ‘죽기도 전에 묻히는 자리’라는 선입관을 뒤엎고 부통령직을 ‘대통령으로 올라서기 위한 발판’으로 잘 활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는 함께 짝을 지어 선거에 출마한다는 뜻에서 러닝메이트(Running mate)로 불린다. 최근 바이든은 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자신의 러닝메이트한테도 지지를 못 받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2017∼2021년 재임)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한테 투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펜스는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선거 사기’라는 음모론을 계속 펴자 그와 완전히 결별했다. 그리고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펜스를 ‘배신자’로 규정한 트럼프 극성 지지자들의 끈질긴 훼방에 그만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2020년 3월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백악관에서 연설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옆에서 이를 듣고 있다. 두 사람은 2020년 11월 대선 후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AP연합뉴스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선발돼 부통령이 되길 꿈꾸는 공화당 유력 정치인 7명이 ‘충성 경쟁’에 돌입했다는 후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트럼프를 향한 치열한 ‘오디션’이 펼쳐지고 있다”고 평했다. 원래 TV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는 이를 즐기는 모습이다. 연설 도중 “50명이 전화해 (부통령 자리를) 간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닝메이트를 당장 확정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7명으로 압축된 유력 후보군에게 ‘안심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트럼프와 펜스의 관계가 어떻게 끝장났는지 똑똑히 지켜봤으면서도 부통령직에 그렇게 욕심이 생기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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