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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베트남, 70년 만의 '화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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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7 15:57:12 수정 : 2024-05-07 15: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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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당시 베트남은 전쟁터였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는 이름 아래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로 지배하려던 프랑스와 베트남 독립을 열망하는 공산주의 단체 베트민(월맹)이 충돌했다. 월맹은 1945년 9월에 이미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이를 저지하며 유혈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나치 독일군에 허망하게 무너졌던 프랑스군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베트남 군사작전에서 꼭 성공을 거둬야만 했다. 2차대전을 계기로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프랑스군 수뇌부 머릿속엔 ‘지구촌 곳곳에 광활한 해외 영토를 거느린 위대한 프랑스’라는 허상(虛想)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베트남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1954년 5월7일 베트남군이 프랑스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디엔비엔푸 전투는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 식민통치의 종식을 가져왔다. 르코르뉘 장관 SNS 캡처

2차대전 때 체면을 구기긴 했으나 프랑스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자부했다. 월맹군을 정규군도 아닌 민병대쯤으로 여겨 얕잡아봤다. 무기 성능이야 프랑스군이 훨씬 우세했다. 무엇보다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베트남 북부 디엔비엔푸 계곡에 자칭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한 프랑스군은 공중을 통한 보급만 제때 이뤄지면 언제까지고 월맹군을 막는 게 가능하다고 여겼다. 반면 월맹군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일단 병력 규모에서 프랑스군을 압도했다. 자신이 왜 이곳에서 싸워야 하는지 도통 모르는 프랑스군 병사들과 달리 월맹군 병사들은 정신무장이 잘 돼 있었다. 여기에 절대다수 베트남 주민들도 월맹군을 확고히 지지했다.

 

1954년 3월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 요새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월맹군의 곡사포와 대공포 등 중화기들이 배치됐다. 프랑스군이 미처 상상조차 못 한 일이다. 베트남 주민들은 월맹군을 위해 이 무기들을 수백㎞ 떨어진 곳에서 말 그대로 구슬땀을 흘리며 운반해왔다. 전세가 뒤집어졌다. 프랑스군 진지에 월맹군 포탄이 날아들며 장병들은 흐트러졌다. 월맹군의 대공포 사격에 프랑스군 수송기들은 제대로 비행할 수 없었다. 기껏 실어 온 보급품을 투하하면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 일쑤였다. 고립되고 포위당한 프랑스군은 56일간 저항한 끝에 1954년 5월7일 항복했다. 7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1만1000명가량은 포로로 붙잡혔다. 군사적 대재앙 앞에 프랑스는 자국군 철수와 베트남 독립을 결정한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부 장관(왼쪽)이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트남이 디엔비엔푸 전투 관련 행사에 옛 적국인 프랑스 정부 대표를 초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코르뉘 장관 SNS 캡처

7일 디엔비엔푸 승전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베트남에서 성대한 경축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기념식에 함께했다. 과거 적국으로 싸운 프랑스의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과 당시 프랑스 측 참전용사들이다. 베트남이 프랑스 입장에서는 ‘흑역사’에 해당하는 디엔비엔푸 전투 관련 행사에 프랑스 정부 대표를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코르뉘 장관은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프랑스와 베트남은 과거사를 열린 자세로 되돌아보려는 공통의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두 나라가 협력에 나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 정세는 계속 바뀌고 그에 따라 영원한 적도, 또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이 진리임을 새삼 깨닫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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