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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600여명 다치는데… ‘근로’ 인정 못 받는 노인 일자리

입력 : 2024-05-07 20:00:00 수정 : 2024-05-08 02: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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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하굣길 안전지킴이 등
공공일자리 88만 개 중 62만 개
공익형 분류… 자원봉사로 인정
법원도 “자발적 봉사… 산재 안 돼”

관리인력, 노인 100여 명당 1명꼴
법적 보호장치 사각지대 목소리

지난해 7월26일, 충남 논산의 한 공용주차장에서 A(76)씨는 정부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관리자 없이 홀로 떨어져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런 그를 주차장에 진입하던 25인승 버스가 덮쳤다. 비명소리를 듣고 인근에서 달려온 다른 작업자들이 119에 곧바로 신고했지만, 이 사고로 A씨는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노인들의 경제활동을 위해 공급하는 ‘노인일자리’에서 해마다 1600여명 이상이 다치고, 많게는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88만개에 달하는 노인일자리 대부분은 ‘근로’로 인정받지 못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인일자리를 무분별하게 늘리기에 앞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노인일자리 안전사고는 2022년에만 1658건 발생했다. 2018년 964건이었던 안전사고는 2019년 1453명으로 급증한 뒤 1600∼1700명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사망사고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사망사고는 1건에 불과했는데, 2020년에는 10건, 2021년에는 9건이 발생했다.

노인일자리 대부분은 단순노동으로, 노인들이 작업 중 골절이나 염좌, 찰과상 등을 입는 경우가 많다.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노인일자리 참여자에 대한 관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의 한 노인전문복지센터 관계자는 “전체 (노인 일자리) 참여자 150명을 관리하는 데 전담 인력은 1명”이라며 “이분들을 현장에서 전부 쫓아다닐 수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인일자리 수행기관 담당자 1인당 맡은 참여 노인의 수는 100∼140명에 달했다.

노인일자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의 문제도 존재한다. 노인일자리 중 환경미화 활동이나 등·하굣길 안전지킴이와 같은 ‘공익형’ 일자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자원봉사자로 분류돼 있다. 산업재해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업장 과실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다. 2022년 기준 전체 노인 공공일자리 88만1535개 중 62만6391개(71.1%)가 이 같은 공익형이었다. 근로자로 인정받는 사회서비스형, 시장·취업알선형은 각각 7만, 5만개뿐이다.

2022년 경기 양평에서는 노인일자리로 쓰레기를 줍던 한 노인이 차에 치여 숨졌는데,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7일 ‘공익형 노인일자리 근무 중 사망한 경우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유족 측은 복지관의 지시를 받고 급여를 받고 일했다는 점에서 근로자가 맞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공공형 공익활동은 노인이 자기만족과 성취감 향상,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라고 판단했다.

한 노인이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 전문가인 권영국 변호사는 “아무리 업무 강도가 낮더라도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을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판단인지 의문이 든다”며 “(노인일자리 종사자가) 법적 보호장치로부터 예외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를 당한 A씨의 지인은 “손주들 용돈 주고,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부담 덜 되려고 시작한 노인일자리인데, 안전은 누가 지켜 주느냐”고 호소했다. 산재 적용이 어렵다면 우선은 안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박승희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일자리가 대부분 소규모 지역 복지센터에 위탁 시행되고 있어 충분한 사회복지사 인력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이러한 곳의 현장 의견을 적극 청취해 안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인일자리 예산을 지난해 1조5400억원에서 올해 2조264억원으로 증액했고, 노인일자리를 2027년까지 120만개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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