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정장 패션이 아닌 수수한 면바지 등 캐주얼 복장을 한 30대 초반의 젊은 CEO가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고백처럼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울림이 돼 다가왔다. 국내 벤처업계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어렵사리 성공의 첫발을 막 내디딘 자의 꿈 같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달 블로그업계의 상호협력을 통해 블로고스피어 발전을 추구하는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노정석(32·사진) 태터앤컴퍼니 대표의 얘기다.
KBBA에는 태터앤컴퍼니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미디어랩, 태그스토리, 블로그칵테일, 미디어유, 온네트, KTH, 블로터앤미디어 등 12개사가 발기한 블로그산업계의 첫 공동조직이다.
그를 지난 14일 서울 강남역 근처의 일식당에서 만났다. 훤칠한 키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목소리 등 전혀 ‘CEO답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구나 2002년 아마추어 레이싱에서 네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카레이서이기도 하다.
노 대표는 “많은 국내의 벤처 투자자들은 벤처기업인에게 연대보증이나 담보 등을 요구하는 게 현실”이라며 “벤처인들의 기술력, 경쟁력, 가능성, 열정만 보고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자니, 거의 철학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그 자신이 일본의 손정의씨가 이끌고 있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를 유치, 회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계기를 마련했다.
노 대표가 국내 설치형 블로그의 대명사인 ‘태터툴즈(현재는 텍스트큐브)’를 바탕으로 한 웹2.0 전문벤처인 태터앤컴퍼니를 세운 것은 2005년 9월. 그의 세번째 창업이었다.
“인터넷과 개인의 힘이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죠. 온라인에서 개인의 힘을 키우는 데 블로그가 가장 좋은 도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번째 창업 당시 그는 자신이 가진 돈 4억8000만원 전부를 털었다. 2006년 11월에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일했던 김창원씨가 합류, 공동대표를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회사와 블로거들이 수익을 함께 나누는 수익모델을 지향했지만, 2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서도 제대로 수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06년 9월 손정의의 한국 내 벤처투자회사인 ‘레인저펀드’가 회사에 15억원을 투자했던 것이다.
“좋은 벤처캐피털을 만난 것이죠. 보통 벤처투자자들은 안전하게 회사를 운영하라고 주문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좀더 리스크하게 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우리를 이해했어요. 우릴 믿어준 것 같아요.”
태터앤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노 대표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의 해킹 전쟁을 주도한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KAIST의 전산시스템 연구동아리 KUS(쿠스)의 회장으로, 이 사건으로 40여일간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어머니가 보석금 200만원을 내고 난 뒤에야 풀려났다.
1997년 보안업체 인젠의 창업멤버로 참여한 그는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며 성공했지만, 2002년 9월 인젠 지분을 팔아 또 다른 보안회사 젠터스를 설립했으나 망하고 말았다.
이후 SK텔레콤에 1년간 취직했던 그는 2005년 태터앤컴퍼니를 차려 세번째 창업을 했다. 태터앤컴퍼니는 현재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공동으로 블로그 전문서비스 ‘티스토리’를 내놓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노 대표는 중국과 일본 네티즌의 인기 속에 한중일 3국을 아우르는 블로그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성공의 트랙에 올라서는 모양새다.
“그동안은 경험을 축적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입니다. 가을쯤 본격적으로 참여와 개방정신이라는 웹2.0 정신에 맞게 사업을 벌이려 합니다.”
김용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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