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언어폭력 신고 접수 올초보다 3배 가까이 늘어
“벌써 한 달째인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7월20일 오후 2시, 경기경찰청 ‘117학교폭력 신고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A양 어머니였다. 경찰은 학교 측에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고, 매주 한 차례씩 심리상담 교사를 A양 집으로 보냈다. 치료는 방학 내내 계속됐다.
학교폭력이 진화하고 있다. 구타 등 물리적 폭력이 감소한 대신 그 자리를 ‘언어폭력’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어폭력은 ‘집단 따돌림(왕따)’과 더불어 피해자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자살 등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주범”이라며 “사회적 위기의식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관계 당국의 세심한 실태 분석과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상해·폭행 등 신체폭력 신고는 총 2만3465건(60.3%)이었다. 명예훼손·모욕·협박 등 언어폭력은 9159건(23.5%)으로 집계됐다. 여전히 물리적 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그 추이를 보면 변화는 뚜렷했다. 신체폭력은 1월 65.8%(387건)에서 9월 51.8%(7750건)로 줄어든 반면, 언어폭력은 11.1%(65건)에서 30.7%(2381건)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왕따 피해는 총 4218건(10.8%)이 신고됐고, 월별 비중이 10%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펼치면서 과거에는 무심코 넘어갈 일도 적극적으로 신고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당국의 ‘무관용 원칙’ 속에서 폭력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은밀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소용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전문의(임상심리)는 “언어폭력은 시공간을 초월해 지속되고 강도도 더 높다”면서 “피해자에게 끼치는 폐해는 (신체폭력보다) 더 지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은 “언어, 왕따 폭력이 IT(정보기술) 발달과 맞물려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법은 어른들의 관심과 개입으로 귀결됐다. 허찬희 영덕제일병원장(전 한국정신치료학회장)은 “대인관계에서 공격을 받을 때 자존감이 낮은 위험군은 적개심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표출해 자해, 자살 등으로 가곤 한다”면서 “가정에서부터 자신의 의사를 안심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 전문의는 “요즘 청소년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 능력은 물론 스트레스에 견디는 ‘좌절 내인력’이 떨어진다”면서 “사실상 붕괴된 인성교육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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