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내 말도 의심…보람된 일 많아 후회없어" “판사는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다.”,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요 … 아내와 부모님의 말마저 의심하곤 한답니다.”
최근 지방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투신 자살한 A부장판사가 평소 판사 생활에 심한 회의를 느꼈음을 보여주는 글이 2일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평소 다니던 교회 게시판에 ‘판사들의 애환과 직업병’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로, 판사직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는 “판사… 물론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고 세간의 농담으로 ‘의사는 부인과 자식들이 좋고, 검사는 친인척들이 좋으며, 판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좋다고 하더라구요”라면서 “과연 그럴까요. 애환이나 직업병이 없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판사는 생산적인 직업이 아니다. 막말로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A부장판사는 “판사는 만능이 아니다. 재판에 있어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들”이라면서 “자신들이 가장 잘 알면서 왜 판사에게 판단해 달라고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그는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라면서 “의심과 마음의 저울이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 말마저 의심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라고 표현했다.
A부장판사는 명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판사들의 모습을 연민하기도 했다. 그는 “판사는 올라가면 갈수록, 승진하면 할수록 업무량이 더 많아진다”며 “대법관 응접실을 방문해 보면 소파에까지 소송기록이 가득 차 있다.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대법관들은 밤새워 사건기록과 씨름한다”고 전했다.
그는 “그래도 자녀들을 판사 시키겠느냐”고 묻고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판사가 되기를 강권하지 않는다. 그저 원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털어놓았다.
A부장판사는 “그런데 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애로와 직업병을 겪기도 하지만 참으로 보람된 일도 많더라”며 글을 맺어 힘든 속에서도 보람을 찾으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 교회 관계자는 “평소 아무일 없이 밝은 분으로 기억한다”며 “교회에 잘 나오시고 교우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고 전했다. A부장판사는 몇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휴직하기도 했으나 상태가 호전돼 1년 전쯤 복직해 근무해 왔다.
조민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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