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낙찰 받고
세입자들 ‘錢爭’ 인천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직장인 W(38)씨는 요즘 화병이 나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2009년 말 맺은 2년 임대차계약이 지난해 끝났는데 집주인은 보증금 1억원을 돌려줄 기미조차 없다. ‘세입자를 구하면 보증금을 받아 돌려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하지만 이사갈 집을 봐둔 상태다 보니 집주인 사정을 헤아릴 처지가 아니다. 그는 “전세 들 때 보증금 깎아 달라고 집주인에게 사정해도 안 먹혀 빚까지 내 들어왔는데 이제는 ‘배째라’는 식”이라며, “집주인에게 (보증금반환소송을 위한) 내용 증명을 보내 보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경매절차라도 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2∼3년 전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할 때 임대보증금을 크게 올렸던 집주인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수도권 일부 지역의 역전세난 탓에 전세 매물이 잘 빠지지 않자, 보증금을 돌려받을 목적으로 살던 전셋집 경매를 신청하거나 아예 본인이 낙찰을 받아버리는 ‘세입자 반란’이 시작된 것. 멈출 줄 모르고 치솟은 전셋값이 부동산거래 실종, 집값 하락과 맞물리며 부메랑이 되어 집주인과 세입자 처지를 역전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부동산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전셋집 경매를 신청한 사례는 지난해 총 631건으로 2010년 556건 대비 13% 늘었다. 올 들어서도 2월 현재 52건이 신청됐다. 지난해 2월 30건보다 20건이나 많다.
특히 세입자가 전셋집을 직접 낙찰받은 사례는 지난해 453건으로 2010년 339건보다 33.6%나 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010년 53건에서 지난해 95건으로 80% 늘었고, 인천과 경기도도 각각 82건에서 123건, 204건에서 235건으로 증가했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전셋값과의 격차가 좁혀진 데다 경매시장에서 저가 낙찰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심리가 확산한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6월 경매에 나왔던 경기 부천시 A다세대주택은 집값(1억7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8400만원에 세입자가 낙찰을 받았다. 올해 1월에 경매로 거래됐던 서울 서초동 B연립주택 역시 감정가 8억5000만원의 60%에 불과한 5억1700만원에 세입자가 사들였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격히 오르다 보니 새로운 세입자는 집 구할 엄두를 못내고 기존 임차인은 재입주를 포기하는 역전세난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집인이 늘고 있다”며 “무리한 전세보증금 인상은 집주인 자신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매시장이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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