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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학벌사회 종식시킬 근본 틀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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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교육정책 신뢰도

당·정·청 주도권 다툼 끝내야
오성삼 건국대 교수·교육학
‘자율’과 ‘경쟁’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또 한 차례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발표한 정부의 교과목 축소 방침은 2007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교과목 확대 방안을 시행하기도 전에 뒤집고, 수능 응시과목 축소 방침도 여러 차례 말이 뒤바뀌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정부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특히 학원교습 규제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촉발된 정부의 사교육 대책은 당·정·청 간의 불협화음이 커지면서 교육 수요자와 학교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교육과학기술부가 진원지로 알려진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하늘 아래 새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안으로 쏟아지고 있다. 학원 심야교습 단속, 고등학교 이수교과목과 수능과목의 축소, 고교 내신 절대평가로의 전환, 특목고 입시안 개선, 공교육 정상화, 고1 내신성적 대입 미반영, 입학사정관제 전형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사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치유해야 할 병리적 현상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가정 경제의 부담은 물론 학교 교육의 파행을 촉발하고 자기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을 저하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4%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에서 사교육 문제가 이처럼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특정 대학 인기학과가 아니면 청년실업 대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 개인의 능력보다는 학벌이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사교육을 촉발한 것이다. 대학수험생의 특정대학 쏠림현상과 특정대학의 제한된 입학정원이 빚어내는 수요·공급의 불균형도 사교육을 촉발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깝게는 대학입학 전형제도를 대폭적으로 손질하고, 장기적으로는 학벌중심 사회에서 능력중심사회로 전환돼야 한다.

아무리 학원을 단속하고, 수능과목을 축소하고,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꿔본들 세칭 일류대학이 존재하고 입학정원 내의 제한된 소수의 인원만 성공하는 경쟁시스템 아래서는 그 어떤 처방과 대안을 내놓아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교육부가 추구하는 대로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해도 대학에서의 학생선발 방법이 달라지고 학벌중심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온갖 처방이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교육 문제 해결대책이 필요하기는 하나 집권여당과 교육부가 나서고 청와대가 사교육 문제에 매달리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 나라의 교육정책은 우수한 인재들이 제도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그들의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신장시키도록 길을 열어주고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학생이 가난의 대물림 고리를 끊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말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코자 한다면, 학력과 학벌중심 사회를 종식시키고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앞당기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자율과 경쟁을 지향한 정부의 교육정책이 지금처럼 혼선을 빚는 데에는 ‘자율을 통한 경쟁’을 기대한 본래의 취지가 ‘경쟁을 위한 자율’로 왜곡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교육정책이 혼선을 빚는 이유는 ‘자율’이라는 교육적 가치와 ‘경쟁’이라는 시장적 가치의 충돌이 빚어내는 부작용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경쟁지향적 교육정책에 경제학자들의 등용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교육정책에 경제학자들이 포진하면서 생겨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율과 경쟁, 교육적 가치와 시장적 가치의 충돌 현상은 정권 내내 오락가락 좌충우돌 현상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따른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무엇보다 당·정·청은 주도권 다툼에서 벗어나 교육정책의 근본 틀을 수립하는 데 온갖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성삼 건국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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