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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乙의 언어도 되돌려 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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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반란으로 시작된 갑을관계 변화
갑을 불공정 거래가 낳은 한글 파괴
경제민주화의 위력이 대단하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지난해 총선·대선의 전쟁터는 경제민주화 깃발로 뒤덮였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공천심사 기준에 ‘경제 사회 민주화 가치에 투철한 인재’가 등장한 뒤 경제민주화가 선거전의 최대 쟁점이 됐다. 칼을 먼저 뽑은 것은 야당이었으나 여당이 비슷한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리라’는 예감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로 현실화할 것처럼 보였다.

새 정부의 갈지자 행보부터 그랬다. 여당은 ‘경제민주화’ 보따리를 집었다 놨다 하며 눈치를 봤다. 재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회의 경제민주화 관련법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팽팽한 여야 줄다리기에 시선이 온통 쏠리고 있었다. 갑자기 경제민주화 협상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라면 상무’ 사건이 터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빵 회장·남양유업 사태가 잇따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치도곤을 맞는 갑들이 늘고 있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을의 반란이 시작됐다. 갑을 관계의 틀이 바뀌고 있다. 잘못된 갑을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뿌리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국회에서는 정년 60세 연장법, 하도급법, 대기업 등기임원 보수공개법이 속속 통과됐다. 굵직한 경제민주화 관련법이 국회 의사당 문앞에서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성공할 것이다. 여야 경쟁도 볼 만하다. 민주당이 ‘乙을 위한 정당’을 선언하자 새누리당은 ‘갑을 상생 정당’으로 응수한다. 그릇도 차면 넘치는 이치인가. 어느새 ‘을의 과잉 보호’를 걱정하고 을의 반란이 가져올 ‘또 다른 을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갑이 을을 억누르는 불공정 거래의 관행이 낳은 부작용은 또 있다. 어법에도 맞지 않는 지나친 존댓말이다. 사물이나 형용사에 존칭을 붙이는 이상한 높임말, 필요없는 미사여구가 난무한다. “여기 잔돈 있으십니다” “2000원이십니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교환은 가능하시고 환불은 안 되십니다” “오늘 날씨가 더우십니다”…. 서비스 업종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이른바 을의 언어다. ‘손님은 왕’이라며 ‘고객만족’ ‘1등 서비스’를 지향하는 친절 교육이 낳은 괴물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돈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상담원 녹취록이 화제가 됐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의 동문서답을 고객센터 직원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끝까지 친절히 응대한다. 처음엔 웃다가 할머니 못지않은 고객센터 직원의 끈기가 안쓰러워졌다. 어지간하면 “전화를 잘못 거셨다”고 할 법도 하건만 미련스러울 정도로 “LG유플러스 고객센터”를 되풀이한다. 과잉 친절이 안쓰럽다 못해 답답하다. 이 녹취록은 상담 직원의 인내심과 친절함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사내 교육자료라고 했다.

을의 언어가 한글 파괴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무감각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겉으로는 귀에 거슬린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불편한 과잉 서비스가 싫지 않은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고 일해야 하는 ‘감정노동자’가 6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앞에서 갑 행세를 하려는 을들이 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불쾌한 을의 언어는 바로잡을 수 없다.

영원한 갑, 영원한 을은 없다. 관계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을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친절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했다.

누구의 말처럼 지나친 친절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적절한 불편’을 원해서가 아니다. 넘치지 않는 공정한 서비스에 만족할 일이다. 어느 백화점이 협력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실시한다는, 본사와 협력사 직원이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는 ‘롤플레잉 교육’, 갑과 을도 해보자. 그러면 을의 언어도 달라지지 않겠나.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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