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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세상] 서비스 '해지'하기 참 어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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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고 방치하던 무선인터넷 계정을 해지하기로 했다. 워낙 사방에 인터넷이 넘쳐나는지라 몇 년 전 가입한 계정을 써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약정기간과 위약금이 신경쓰였지만 굳은 결심을 하고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사람이 아닌 자동응답시스템(ARS)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화를 한 목적에 따라 번호를 누르라 하고, 다음엔 전화번호를 누르라 하고, 또다시 주민번호를 누르라 하고. 뭐 이렇게 누를 게 많은지 한참을 전화기와 씨름을 하고 드디어 상담원과 통화가 이루어졌다. 상담원은 왜 해지하려는지, 그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등을 묻고 장기 가입의 경우 여러 가지 혜택이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장황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해지업무는 ‘평일 낮시간’에 전화국에 직접 가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날 해지를 하는 일은 실패하고 말았다. 해지에 성공한 것은 근 한 달 가까이 지나서다. 직장인인지라 평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평일에 휴무를 할 일이 생겨서 그 아까운 시간을 쪼개 잠깐의 해지업무를 위해 전화국에 갈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에 전화국이 어디 있는지도 그날 처음 알았다. 요즘 웬만한 일은 인터넷에 들어가 클릭 한번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디지털로 가능한 시대에도 해지만큼은 아날로그였다. 그 길고도 힘든 과정을 통과하고 나니까 뭔가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탈출 과정이 드문 일이 아니긴 하다. 안 쓰는 몇 개의 신용카드를 해지할 때도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행히 신용카드사는 전화로 해지업무가 가능했지만 마찬가지로 ARS와 씨름을 하고 상담원과 통화를 해야만 했다. 그날 따라 상담원은 왜 이리 길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던지.

나중에 콜센터에서 근무한 친구를 통해 이 모든 일이 ‘해지 방어’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신사나 카드사 등은 해지업무를 전담하는 팀이 있고, 이들의 주업무는 고객의 해지에 대한 ‘방어’라는 것이다. 가입자는 어떻게든 해지를 하기 위해 ‘공격’하고 기업은 ‘방어’한다. 세상에나. 이 길고 힘들던 과정이 사용자와 기업의 공방전, 한판 대결이었다니.

2011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신용카드 감축방안을 내놓으면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해지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월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서비스 이용자가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 유선전화의 이용 계약을 해지할 때 절차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용카드 해지절차는 지금도 여전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무선인터넷 해지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전화국에 가야 한다. 급기야 지난 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초고속인터넷 해지업무를 지연 처리한 통신 3사에 시정명령까지 내렸다. 그래도 달라진 게 없다.

아마도 해지업무가 편리해지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고객의 해지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해지업무가 고객을 위한 ‘마지막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작은 생각의 전환이 아쉽다.

서필웅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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