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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문학 |
문제는 이러한 해프닝들이 인터넷의 정보 쓰임새가 무척 유용하기 때문에 벌어진다는 데 있다. 헌법의 제 조문에서 라면 맛있게 끓여 먹는 법에 이르기까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정보들을 아무 때나 주울 수 있는 건 오직 인터넷 때문이다. 게다가 유용하기만 하랴? ‘고양이 사이트’ 같은 곳이 매우 잘 보여주듯 인터넷의 모든 사이트는 정보에서 출발하지만 놀이로 귀착함으로써 점점 흥성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전환의 매듭 속에 인터넷의 가능성과 위험이 압축돼 있는 것이다. 가능성의 방향에서 보면, 유용성의 공간이 유희의 공간으로 변함으로써 지적 신장이 정서적 충만과 결합하고 그래서 누리꾼들의 참여도가 극대화된다는 게 인터넷의 환상적인 광경이다. 그러나 위험의 방향에서 보자면 놀이가 유용성을 대체할 때, 후자의 사안들에 수반되던 한계효용의 법칙이 무너지고 무차별 현상 속에 빠져든다는 데에 그것의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무차별 현상이란 정보의 차원에서 참된 정보와 거짓 정보의 구별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누리꾼의 차원에서 보자면 맹목적인 몰입 속에서 놀이가 다시 집념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정보의 진위가 실종되면 정보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흉기로 변한다. 그래서 실오라기만큼의 관련이 있으면 무시로 끌어내 그 인격을 망가뜨려 괴물로 추락시킨다. 마찬가지로 맹목적인 몰입 속에서 놀이도 훼손돼 버린다. 놀이란 원래 변신의 자유로운 체험, 즉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는 연습이자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이다. 그런데 놀이가 집념으로 바뀌면 도박 중독에서처럼 이질적인 존재들과의 교류와 다른 존재로의 변신이라는 문제 틀은 사라지고 모든 관계들이 나와 먹이 사이의 관계로 환원돼 버린다. 그리고 나는 저 결코 도달되지 못하는 먹이에 대한 조갈증으로 내부가 새카맣게 타버려 스스로 괴물로 추락하고야 만다.
인터넷은 이 양극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장하고 있다. 긍정적인 가능성 때문에 인터넷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며 계속 번성할 것이다. 따라서 파스칼 리셰가 단언했던 것처럼 웹을 무시하려 들었다가는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 부정적 가능성 때문에 인터넷에는 정화장치를 가설하는 일이 필수조건이 된다. 그런 장치를 스스로 갖추기란 인터넷의 속성상 매우 어렵다. 그 역할을 할 적임은 인터넷의 전 단계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이 될 것이다. 그것은 본래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었던 철학이, 과학의 여러 분야가 진리를 분점하게 된 시대에 접어들어 진리의 판별이라는 기능을 자신의 중요한 할 일로 삼았던 것과 같다.
요즈음 비치고 있는 포털사이트와 전통 언론 사이의 갈등은 이런 상보 관계가 면밀히 운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인터넷이 언론 기능을 겸하기 시작했을 때 그 기능과 방법과 경계의 문제가 논의됐어야 했다. 그리고 언로 유통의 구조가 있다. 누누이 얘기해 온 것이지만 인터넷에 무한한 자유가 있는 듯 착각하기 일쑤인데, 자유의 ‘규격’만은 웹의 작고 큰 구조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갈등이 불거진 지금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토론할 적기가 아닐까.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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