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반세기 고속질주
1조달러 클럽 가입은 한국이 세계 경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는 데 무역이 1등 공신이었음을 입증해준다. 1조달러 달성은 무역 강국들이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들어가는 통로가 아니다. 1조달러를 달성한 8개국 가운데 작년에 이를 유지한 국가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등 6개국에 불과했다.
1947년 처음 1억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는 1964년 5억달러, 1967년 13억달러, 1974년 113억달러로 불었으며, 1988년 1000억달러, 2005년 5000억달러를 각각 넘어서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수출 지향형 경제성장 정책에 힘입어 1964년 1억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은 1971년 10억달러, 1977년 100억달러, 1995년 1000억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으며, 올해에는 세계에서 8번째로 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가 1980년 31.7%에서 2010년 84.6%로 높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무역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2000∼2011년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평균 67.9%이며, 지난해 수출에 따른 취업유발인원은 제조업 분야 321만명(79.6%)을 포함, 401만명에 달했다.
결국 원조에 의존하던 세계 최빈국의 지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은 200배 이상, 2009년에는 원조를 받던 나라 중 최초로 원조 공여국이 되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글로벌 기업도 다수 보유하게 됐다.
◆대외의존도 심화의 그늘
1조달러 클럽 가입은 반가운 일이지만 대외의존도 심화는 걱정거리다. 무역만 지나치게 잘나가면서 투자와 내수는 부진한 왜곡현상이 고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역의존도는 과도하게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비중은 1990년 51.1%에서 2008년 92.3%로 매년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88%를 기록했다. 일본은 22.3%, 미국은 18.7%, 중국은 45%이고, 세계 최대 수출국인 독일도 74.8%로 우리보다 낮다. 이 같은 과도한 무역의존도는 한국경제의 대외적 취약성을 야기했다. 수출이 늘면 투자가 활성화하고 고용 창출을 가져온다는 ‘낙수효과’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수출의 특정품목 의존도 심화도 문제다. 전체 수출에서 상위 5대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7년 38% 선이었지만 올해는 42%까지 높아졌다.
당장 글로벌 재정위기로 촉발한 선진국 경제침체가 수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은 지난 7∼10월 5.5% 감소한 반면 수입은 22% 늘었다.
불꺼지지 않는 무역 전초기지 우리나라 무역규모가 5일 세계 아홉번째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4일 환하게 불을 밝힌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신선대 부두에서 수출품을 담은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
무역으로 성장하고 무역의존도 심화로 고심하는 한국의 딜레마를 풀 열쇠도 무역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수출에 방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무역대국으로서의 성숙된 자세에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이를 위해 12일 ‘무역 1조달러 기념 제48회 무역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와 한·EU FTA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으로 2조달러 시대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성장한 것은 과거의 투자한 부분을 바탕으로 성장한 셈인데, 국내외 투자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져야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행히 FTA망이 확충되고 있으니 정부는 교역확대가 이번 협정을 통해 극대화되도록 활용기반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역 1조달러 시대라는 의미는 바꿔 생각하면 대외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도 커졌다는 뜻”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2조달러 시대로 가는 전략과 함께 내수확대·서비스산업 지원 등 고용 및 국내 경제를 살릴 정책도 동시에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천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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