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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男 '데이트비·결혼 비용까지…우리도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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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3-27 19:24:34 수정 : 2013-03-27 19: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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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요즘은 역차별” 女 “아직도 불평등”… 감정의 골 깊다 #. 직장인 김모(35)씨는 여자친구와 결혼 얘기가 나오면서 고민이 부쩍 늘었다. 수도권 전세 아파트를 구하려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직장생활 7년간 등록금 대출을 갚느라 모은 돈은 빤하다. 여자친구에게 “집값·혼수 합쳐서 반반씩 하자”는 말을 꺼내려니 입이 안 떨어진다. ‘여자들이 필요할 때만 평등을 찾고 돈 낼 땐 나 몰라라 한다’는 인터넷 글만 하릴없이 쳐다본다.

#. 재작년 결혼한 맞벌이 여성 이모(33)씨는 새 부서로 배치된 후 툭하면 야근이다. 게다가 집안일에 시댁 행사·제사까지 챙기려니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가장 큰 불만은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여기는 남편의 태도다. 피곤하면 일단 누워 버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설거지·청소를 끝낸 적이 부지기수다. ‘돈은 같이 버는데….’ 육아까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난다.

우리 사회 남성과 여성이 엇갈리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남성들 사이에 ‘역차별’ 논란이 나오고 있다. 남성들이 모인 인터넷 공간에서는 데이트·결혼 비용이 민감한 주제가 된 지 오래다. ‘여성 할당’ ‘여성 전용’에 대한 반감도 높아간다. 이런 흐름은 과격한 네티즌의 공격성 표출로 확대되고 있다. 여성이 겪는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성 임금은 아직도 남성의 60% 초반 수준이다. 가부장적인 가정문화도 여전하다. 시댁 중심의 결혼생활,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는 여성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일상적·문화적으로 자리 잡은 성별 갈등은 우리 사회 개개인의 불만 지수와 불행감을 높이고 심각할 경우 이혼 등 가정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역차별이라니까”… 뿔 난 남성들


남성들의 불만은 인터넷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2006년 ‘된장녀’ 논란과 여성가족부 폐지 서명운동을 신호탄으로 인터넷은 성별 갈등의 최일선이 됐다.

‘밥과 커피값’으로 대표되는 데이트 비용 문제는 심각한 여성비하 표현까지 낳고 있다. 집값 상승으로 남성이 과한 결혼비용을 부담하는 데 대한 성토도 상당하다. 2010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결혼비용은 남성이 평균 8078만원, 여성은 2936만원으로 나타났다.

1999년 위헌 판결이 난 군 복무 가산점 제도는 뜨거운 감자다. 여성·장애인 단체에서는 일부만 혜택을 보는 가산점이 아닌 군 복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군 가산점 논란은 생산적인 보상체계 마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여성계를 향한 분노의 상징으로만 자리 잡았다.

이 같은 흐름의 이면에는 변화하는 성질서가 깔려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여성운동은 2001년 여성부 출범 등 가시적인 성과들을 거뒀다. 반면 경제 양극화와 취업난·실업률은 심각해지고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남성은 부모 세대의 권력과 권위를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데 대해 박탈감을 느끼고, 여성들은 과거 어머니가 아닌 동시대와 비교해 여성이 여전히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남녀간의 인식 차이가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함 교수는 또 “과거 아버지들은 평생 가족을 책임질 기반이 마련돼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감이 합쳐져 남녀관계에서 미묘한 갈등이 촉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연구위원은 “이전에 여성은 취약하고 보호할 대상으로 별 위협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여성의 위상이 어느 정도 올라갔다”며 “남성들이 불편한 심기를 잘못 표현하면 편견 많고 마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익명성이 보장될 때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회는 변한 게 없는데”…힘든 여성들

여성을 둘러싼 성별 갈등 요인 역시 여전하다. 안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 사회의 변화를 “다리를 건너는 순간 몸을 완전히 옮기진 못하고 발을 든 상태로 중심은 여전히 뒤에 있다”고 비유했다. 생각 따로, 현실 따로인 실태는 가사분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통계청이 전국 1만7424가구 3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은 45.3%에 달했지만, 실생활에서는 부인이 주도한다는 여성 응답자가 82%, 남성 응답자는 80.5%나 됐다.

이외에도 ‘시월드’로 대표되는 시댁 위주의 결혼생활과 고부 갈등, 남성 중심적 직장문화 등 여성들이 겪는 전통적인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 연구위원은 “남성은 미디어에서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잘나가는 모습만 보지만 그 이면의 여성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이거나 과거 관례를 답습하는 사회환경에 놓여 있다”며 “아직 평등하지 않은 상태인데 남성들은 평등한 세상이라고 선언하고, 여성들은 ‘말은 그렇게 요란스러운데 실질적으로 너희가 변한 게 뭐가 있느냐’고 하면서 갈등 지점이 뜨겁다”고 말했다.

◆다름 인정하며 하나 되는 사회 지향해야

성별 갈등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혼란과 피해의식,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면 문제가 된다. 갈등 자체에 매몰돼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사회는 병든다.

함 교수는 “이질적인 구성원 사이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를 어떻게 조절·협상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사회통합이 획일화가 아님을 강조했다. 단 하나가 되는 ‘통일’(unification)이 아닌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이해관계가 다름을 전제하고 합의할 규칙을 만드는 ‘통합’(integration)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함 교수는 “남녀 갈등에서도 서로 만족할 만한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여성의 출산은 고용주 입장에서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국가 전체로는 필수적이기에 국가와 사회가 보조를 맞추고 남성의 참여도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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