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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속'을 채우자] 수십억 기부하고도 ‘세금폭탄’… 조특법부터 손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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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05 07:52:11 수정 : 2013-06-05 07: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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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기부금 2500만원까지 인정
액수 크면 클수록 되레 ‘덤터기’
정치권 뒤늦게 법률 재개정 나서
나눔문화 경제 비하면 아직 멀어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참여 유도
삶 속에 녹아든 풍토 조성 중요
“‘기부 천사’ 김장훈, 도리어 ‘세금 폭탄’ 맞게 생겼다.”

최근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 기사 제목이다. 평소 아낌없는 기부 실천으로 칭송이 자자한 가수 김장훈이 상을 받기는커녕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처지가 됐다는 내용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올해 초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때문이다. 새 법률은 근로자 소득공제 한도를 따질 때 지정기부금을 2500만원까지만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00만원 이하의 지정기부금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지만, 그 이상은 초과한 액수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1년에 수십억원씩 기부하는 김장훈은 세금이 전보다 수억원 늘어날 판이다.

나눔과 기부의 문화 확산이 절실한 이때 조특법 같은 걸림돌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기부 문화가 차츰 확산하고 있으나 경제 규모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나눔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12년 11월29일 성신여대에서 열린 ‘사랑의 김장 나눔 봉사활동’에서 이 학교 서경덕 교수(오른쪽)와 가수 김장훈이 학생들과 함께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할 김장을 담그고 있다. ‘기부 천사’로 명성이 높은 김장훈은 개정 조세특례제한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연간 수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할 판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조세특례제한법, 무엇이 문제인가


조특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올해 1월1일의 일이다. 그날 새벽 2013년도 예산안을 급하게 처리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개정이 이뤄졌다. 법이 바뀌면 기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국회의원들이 심각하게 고민한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정부가 제출한 원안대로 거수기처럼 손만 들어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개정 법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지금까지는 지정기부금으로 얼마를 내든 전부 소득공제를 받아 세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2500만원을 넘는 지정기부금에 대해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기부액이 커질수록 세금도 늘어 1년에 10억원을 버는 사람이 2억8000만원을 기부하면 세금이 종전보다 약 1억2000만원 증가한다. 한마디로 좋은 일 하려다가 ‘덤터기’를 쓰는 꼴이다.

자연히 사회복지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조순실 이사장은 “전과 달리 기부를 꺼리면서 ‘이제 그만두겠다’고 의사를 밝힌 기부자들이 생겨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도 “부자나 중산층이 기부를 예전처럼 하지 않는 등 나눔 문화의 후퇴가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은 뒤늦게 법률 재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 등은 지정기부금을 소득공제 한도액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조특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원 의원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부가 저조한 상황에서 지정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것은 기부 문화 활성화를 통해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박근혜정부 정책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원 의원 외에도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 등이 동조하고 있다.

◆경제 규모에 못 미치는 나눔 문화

일각에선 “지정기부금이 문제가 될 뿐 법정기부금은 소득공제 혜택이 그대로 유지된다”며 개정 법률을 옹호한다. 지정기부금은 국제 구호단체나 사회복지·문화예술·종교 등 단체에 내는 기부금으로, 대부분의 복지단체·시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정기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대한적십자사처럼 정부가 지정한 단체나 국가기관에 내는 돈으로, 지정기부금과 달리 조특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개정 법률을 그대로 시행하면 지정기부금은 줄어들고 법정기부금은 늘어나는 결과가 불가피해 보인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소장은 “평소 기부를 많이 하는 고소득층으로 하여금 지정기부금 기부를 포기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법정기부금을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꼼수’를 쓴 것 같다”며 “지정기부금으로 들어갈 돈을 법정기부금 쪽으로 돌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세수 부족분을 보충하려는 건 명분 있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법정모금단체에 법정기부금을 내면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법정기부금이 증가할수록 정부가 앞장서 민간에 기부를 독려하는 형태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지정기부금은 자기가 돕고 싶은 단체·시설을 직접 골라 기부한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가 기부 문화를 주도하는 게 아니고,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정부·민간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다. 기부와 나눔이 일회성 이벤트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의 삶 속에 녹아든 문화의 일부로 정착하는 데 한층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간 모금액이 해마다 증가하는 등 나눔의 문화가 확산하고 있으나 여전히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집계해 발표한 2012년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45위를 차지해 태국(26위)·캄보디아(40위)보다 뒤졌다. 나눔국민운동본부 손봉호 대표는 “아직 경제 규모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의 기부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개인들의 자발적 기부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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