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잉여자금 1분기 10조 늘어 대기업 과장 A씨는 최근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 돈의 대부분을 거둬들였다. 경기 부진과 글로벌 증시 불안으로 주식시장이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불안한 움직임을 이어가자 주식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예금이나 적금 등 은행상품에 돈을 넣어둔 것도 아니다. A씨는 상환하지 못한 아파트대출금과 늘어나는 아이들의 교육비, 물가 등을 고려해 자산을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에 넣어놓고 향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지러운 금융시장에서 ‘불안한 길’을 감내하느니 금융소득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길’로 가기로 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불안이 지속되면서 개인들의 금융시장 참여가 ‘올스톱’됐다.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기피로 주식회전율이 급감한 데다 펀드시장의 개인 비율도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경제와 금융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짙어지면서 개인들이 투자를 줄이고 ‘현금 쌓기’에만 몰두한 결과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코스피시장 상장주식 회전율은 126.57%로 작년 같은 기간(169.65%)보다 39.08%포인트 감소했다. 코스닥시장의 회전율도 271.53%로 작년 상반기(358.61%)와 비교해 87.08%포인트 낮아졌다.
주식회전율이란 일정기간 동안 상장주식 1주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매매가 이뤄졌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높을수록 상장주식의 거래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지난 상반기 코스피시장에서는 상장주식 1주당 1.2차례, 코스닥시장에서는 1주당 2.7차례 매매가 이뤄져 예년에 비해 회전율이 크게 낮아졌다.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든 탓이다.
개인들은 주식시장에서의 직접투자만 기피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간접투자인 펀드에서도 투자자금을 대거 거둬들였다. 국내 펀드시장에서 개인투자자에 대한 판매잔고는 지난 4월 말 현재 113조3201억원으로 전체 309조8454억원의 36.57%에 불과했다. 펀드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은 펀드시장 활황기였던 2007년에만 해도 57.38%에 달해 60%에 육박했었지만 이후 급격한 감소 추세를 지속해 왔다. 채권시장도 회사채시장 냉각 등으로 개인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투자 대신 여유자금 쥐고 있자는 분위기 확산
개인투자자들의 금융투자시장 참여가 저조한 것은 금융시장 불안으로 개인들이 투자 대신 여유자금을 쌓아두는 것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가계·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30조1000억원으로 전분기의 20조4000억원보다 9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자금 운용에 있어서도 현금화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단기저축성예금에만 몰리고 있다. 2%대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도 더욱 금리가 낮은 단기성예금에만 자금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개인들의 소득이 정체상태인 것도 문제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소득 증가가 멈춘 데다가 가계부채도 늘어나면서 개인들이 금융시장에 투자할 만큼의 잉여자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개인 가처분소득은 707조3314억원으로 전년보다 4.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가계부채는 959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2% 증가해 빚의 증가속도가 개인의 소득증가 속도를 추월했다. 기업들도 1분기 현금흐름 보상비율이 55.4%에 이를 정도로 투자를 기피하고 있어 사실상 국내 경제 전반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팀장은 “기준금리 인하, 경기 부진 등으로 인한 자산시장 냉각으로 기업투자뿐만 아니라 개인 저축형태까지도 단기부동화되고 있다”며 “부동화된 자금을 어떻게 실물로 흐르게 할 수 있는지 당국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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