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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3부〉 위기의 가정을 살리자 ③ 절망 속 미래 향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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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31 06:00:00 수정 : 2013-10-31 09: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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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연속 정문진씨 부부 순수와 순민은 서울 송파구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연년생 형제다. 순수는 문현중학교 1학년이고, 순민은 장지초등학교 6학년이다. 첫째 순수는 과학과 수학에 관심이 많지만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별로 없다. 과학영재반에 등록해서 공부하길 바라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희망사항으로 끝난다. 게임과 태권도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의 둘째 순민이는 큰 고민이 없는 듯하다. 집안 형편을 제대로 인지하는 못하는 둘째는 간혹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할 정도의 ‘사고’를 치기도 하는 것 같다.

#퀵서비스하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첫째 순수는 그런 동생을 혼내주고 싶지만 나이 어린 동생이 이해도 된다. 형제를 제대로 보듬지 못하는 아버지 정문진(48)씨의 고민은 더 크다.

“큰애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힘을 보태주지 못해 갈수록 답답합니다.”

10대 후반부터 돈벌이에 나섰지만 정씨의 수입은 항상 시원찮았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정씨는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초등학교 다니다가 집을 나와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는 처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식점과 떡집에서 배달하는 단순 노동일이었다. 5년 전부터는 오토바이를 장만해 퀵서비스를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벌었다. 퀵서비스를 하면서 수입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토바이 할부금, 퀵서비스 회사에 내는 일종의 사납금으로 하루에 3만원도 벌기 힘들 정도였다. 국민임대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40만원 안팎에다가 가족 4인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마저도 올해 초 오토바이 사고로 수입이 끊겼다. 지난 1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빙판길에서 넘어져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두 발로 걷기가 불가능했다. 오토바이 운전을 못하게 되면서 수입도 끊겼다. 사고 초기 치료비가 없어서 집에서 자가 치료를 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수입이 끊기자 5년 전부터 거주하던 임대아파트 관리비도 낼 수 없는 극빈 처지에 몰리게 됐다. 정씨는 “빨리 털고 일어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다행히 구청에서 도움을 줘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울증과 심장병 앓은 엄마와 막내

아내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어머니 박순희(44)씨는 조울증으로 치료와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송파구의 한 임대아파트를 찾은 30일에도 세 부자만 좁디좁은 임대아파트를 지키고 있었다. 정씨는 “애들 엄마는 2개월째 입원 중”이라며 “애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그럴 형편이 못 돼 힘들어하고 병원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형 순수는 “엄마가 밤중에도 자주 깨서 우리도 잠을 못 자는 날이 많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감정장애라고도 하는 조울증은 절망과 우울의 무기력과 흥분된 조증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는 양극성장애다. 정씨는 “아내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 욕심이 많기에 조울증을 앓는 것 같다”며 “말도 많고, 짜증도 잘 내고 그러다가도 치료받으면 자상한 엄마로 돌변한다”며 답답해했다.

박씨는 18살 때부터 20년 넘게 조울증을 앓았지만 지금처럼 증세가 심하지는 않았다. 중매로 결혼했던 2000년에만 하더라도 평범한 남편 정씨가 용납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정씨는 명랑하면서도 참해 보이는 박씨가 맘에 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제때 치료를 놓쳐 아내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게 됐다는 점을 남편 정씨는 못내 아쉬워했다.

어른들만 병원 신세를 진 게 아니다. 둘째 순민이는 세 살 되던 2004년 심장병을 앓았다. 5년 동안 마음고생하면서 수입이라는 수입은 다 병원비로 지불했다. 

정문진씨 부부가 자식교육에 필요한 사항을 적어놓은 메모지.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 담금질하는 가족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 구성원 4명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가족이 제 역할을 다하면 한 세대 이어진 절망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아버지 정씨는 송파구청의 도움으로 재활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대로 서는 게 힘들지만 재활치료를 하면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씨는 “아내가 1년에 2개월씩 치료를 받지만, 가정 환경이 좋아지면 증상도 개선되곤 한다”며 “큰애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작은애가 또래들과 비교해도 명랑한 편이어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문진씨(가운데)와 순수·순민 형제가 좁은 임대아파트 복도에 나와 창가의 맑은 가을을 느끼고 있다. 창문 너머에는 더 활기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살 터울인 형제의 극명한 성격 차이는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민을 묻자 첫째 순수는 “수학과 과학 공부를 더 깊게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며 “영재원에서 수업을 받으려고 지원했는데 붙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공부만이 살길이다’ 등의 ‘채찍과 다짐’의 글을 책상 옆에 붙여놓은 순수의 모습에서는 비장미마저 느껴졌다. 반면 둘째 순민은 “게임도 하고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기분이 안 좋다”고 했다. 둘째 순민은 아주 사소한 농담을 걸더라도 연신 웃음으로 답했다.

이들이 이런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은 고통에서 힘들어하면서도 자식 교육에 적극 나선 부모의 노력 덕분이다. 송파구청이 지정한 기초수급 대상자로 뽑혀 경제적 어려움에서 일부 벗어날 수 있었다. 부부가 일자리를 잃은 채 병원신세만 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회의 도움이 소중하게 작용한 것이다.

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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