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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⑤ '둥지' 찾아 떠도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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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28 06:00:00 수정 : 2013-11-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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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29.7㎡(9평) 남짓 되는 반지하 월세방. 비가 오면 습한 기운이 방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이곳은 김주영(30·여)씨 가족의 보금자리다. 네 식구가 빙 둘러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지만 모두가 함께해 기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김씨네 가족은 여관을 전전했다. 남편 조영호(42)씨가 실직한 뒤 변변히 지낼 곳이 없어 임시방편으로 여관에 짐을 풀었다. 당시 네 살배기 딸 해림이도 함께였다. 조금만 고생하면 방 한 칸 얻을 보증금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고난이었다.

◆여관살이에 화재까지…

겨울비가 촉촉히 내린 지난 25일 오전 동대문구 전농동의 골목길 한편에 자리 잡은 김씨 집에는 김씨와 올해 태어난 둘째 상현이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조씨는 이른 새벽 인력시장으로 ‘출근’했다. 네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조씨는 비가 온다고 마냥 집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운이 좋을 경우 날씨와 상관없는 일감을 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섯 살이 된 해림이는 어린이집에 갔다가 오후 4시가 넘어야 집에 온다.

김씨는 생긋생긋 웃는 상현이를 안은 채 말을 꺼냈다. 아이의 얼굴과 달리 김씨의 목소리는 갈라져 힘겨웠고, 이야기 중간중간 잔기침이 이어졌다.

2006년 당시 23살이던 김씨는 남편을 만나 울산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남편은 작은 회사에 다녔고, 평범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양가에서 도움을 받을 형편은 아니었지만 남편 월급으로 월세를 낼 정도는 됐다.

하지만 남편이 다닌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린 월급도 받지 못했다.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 쫓겨난 김씨 가족은 첫 번째 여관살이를 시작했다.

“당시엔 막막했죠. 어린 딸을 데리고 여관에서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금세 남편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김씨 가족은 2008년 시댁이 있는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김씨는 시댁에서 함께 생활하며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 일을 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마저 문을 닫게 되면서 김씨 가족은 2010년 집을 나와 두 번째 여관살이를 해야 했다. 그 사이 남편은 주차 관리인, 야구장 청소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했다.

더 큰 불행은 여관에서 시작됐다. 2011년 2월 찬바람이 몰아치던 날 여관방을 지키고 있던 김씨는 밖에서 “불이야” 하는 외침을 들었다. 황급히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2중으로 된 창문도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렇게 방에 갇힌 채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 연기를 너무 마신 탓에 성대를 다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화재는 옆 방 투숙객의 부주의로 일어났지만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하고 살 곳만 잃었다.

게다가 여관은 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3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마저 부담해야 했다. “왜 우리한테는 이런 일만 생기나 했죠. 그나마 위안이라면 화재가 발생한 날 해림이가 밖에 있었다는 정도랄까요. 그때는 정말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반지하 월세방에서 김주영씨가 둘째 조상현군을 안고 있다. 김씨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렇게 놓으려 했던 희망의 끈은 가족에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시댁은 도움을 줄 형편은 못 되지만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증금 없는 월세 25만원짜리 집을 소개해줬다. 비록 반지하에 네 식구 살기에 비좁은 방이지만 여관살이를 하던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었다.

남편은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 사이 부부에게는 둘째가 태어났다. 하루하루 생활하기 힘들지만 둘째는 부부에게 큰 축복으로 다가왔다.

“주변에서는 ‘세 식구 살기도 힘든데 왜 애를 또 낳느냐. 차라리 보육원에 맡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해요.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때 우리 부부에게 온 둘째 상현이는 힘든 하루를 버티는 힘이 돼주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씨 가족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주민센터의 직원은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민센터에서 적게나마 후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2011년 화재 당시 받지 못한 병원비 보상 문제도 다시금 모색 중이다. 조씨의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할 수 있는 방안도 알아보고 있다. 해림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비용 또한 아이사랑카드를 통해 무상 지원받고 있다. 김씨는 “안 좋은 일이 겹칠 때는 우리 가족 말고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주변에서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이웃이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반지하 방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햇볕을 보고 자랄 수 있게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최근 들어 부쩍 어떤 부모가 돼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김씨는 “하루하루 생활하는 게 힘들다 보니 그동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제 작지만 식구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생긴 만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씨 부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현실을 이겨낼 희망을 찾고 있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환경이지만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살아가면 아이들도 밝게 자라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 부부에게도 언제나 희망은 있는 거니까요.”

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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