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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정도전의 ‘삼봉집’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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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04 20:56:49 수정 : 2014-04-04 2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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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 직무로 여긴
조선문명 설계자의 민본사상 되새겨야
삼봉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가 화제다. 실상은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삼봉의 삶 자체가 드라마다. 지방 중소지주 집안 출신인 그는 정치 낭인 시절에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을 품고 변방의 신흥 무장 이성계를 찾아가 새 길을 열었다. 새로운 정치공동체 건설을 위한 ‘글과 칼’의 만남을 이룬 것이다. 고려말 권문세족의 전횡, 경제파탄 등에 따른 위기 상황을 왕조 교체라는 혁명으로 타개했다. 조선왕조 창건을 주도했지만, 개국 6년 만인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56세의 나이로 이방원에게 피살됐다. 조선왕조 내내 신원되지 않다가 고종 때 경복궁 중건 작업과 더불어 467년 만에 복권됐다.

정치학자 최상용은 삼봉에 대해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투철했던 정치적 인간으로서 남다른 자질을 소유했던 정치가요, 정치이념의 실천에 헌신했던 직업정치가임은 물론이고, 실권을 가진 지도적 정치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정치가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삼봉의 사상은 그의 문집인 ‘삼봉집’으로 후세에 전한다. ‘삼봉집’에는 그의 시문 외에 ‘조선경국전’, ‘불씨잡변’ 등이 담겨 있다.

조선왕조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조선경국전’에는 그의 혁명적 정치 구상이 들어있다. 학계에서는 ‘민본정치의 교과서’로 여긴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사상이야말로 그의 사상체계 밑바탕에 흐르는 기본 정신이라는 것이다. 삼봉은 말한다. “민심을 얻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군주를 버린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그러므로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민생을 보호하는 일을 가장 시급한 직무로 생각해야 한다.” 삼봉이 토지제도 개혁에 힘을 기울인 이유다.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가에 귀속한 다음 민구(民口)를 헤아려 토지를 나눠줌으로써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를 부활시키려 했다.” 이러한 구상은 과전법 시행으로 일부 현실화됐고, 신흥 사대부에 의한 새 왕조 개창의 경제적 기반이 됐다.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민본정치론은 재상정치론으로 이어진다. “재상, 즉 총재라는 것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크다.” 재상이 인사권, 재정권, 군사권 등 모든 정치적 실권을 지닌다. 임금이 하는 일은 재상을 잘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입헌군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어 임금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관료제도를 정비한다. “관(官)을 설치하고 직(職)을 나눠서 서울과 지방에 펼쳐놓고, 널리 현능한 선비를 구해 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제도에 의한 정치를 추구한 것이다. ‘태조실록’에서 사관은 조선 건국에서 그가 모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조선 문명의 설계자’로 불리는 그의 개혁 구상은 조선왕조 곳곳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은 ‘삼봉집’을 펼쳐놓고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한다. “중원의 문자를 빌리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분명 공맹(孔孟)의 담설이 아니요, 이 땅에서 살아 움직이고 스러져간 나의 뿌리의 생생한 숨결을 엿듣게 하는 조선의 언설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력에 헌신하고, 그 권력을 공적인 가치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갈망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삼봉이라고 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은 ‘삼봉집’을 펼쳐들고 이 시대의 갈망을 되새겨야 한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이 등을 돌린다는 교훈을 곁들여서 말이다. 이런저런 개혁을 외치는 정치인은 많지만, 과연 삼봉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청사진과 실행 계획을 지녔는지 묻고 싶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 구차한 삶을 어이 바라랴/ 아득한 천년 후 가을/ 늠름한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다.” 삼봉이 북원(北元) 사신의 영접에 반대하다가 전라도로 유배됐을 때 충분(忠憤)을 토로한 오언고시 ‘감흥’의 한 구절이다. 새 나라, 새 시대를 연 사람의 말이어서 여운이 깊다.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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