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신밀월 시대’를 활짝 열었다. 미국은 중국 부상에 맞서 일본을 활용하기 위해 군사 대국화 등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과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등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격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일 간 신밀월 관계는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는 한국에 무거운 숙제를 안기고 있다. 아베 총리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미·일 동맹을 ‘희망의 동맹’으로 표현했다. 70여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서로 총을 겨눈 두 나라가 동맹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는 건 역설적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역사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워싱턴 링컨 기념관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비스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과거 미국이 공산주의에 맞서 일본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평화적인 부상을 환영한다”고 경계심을 거듭 드러냈다.
미국은 일본이 테러나 기아, 에볼라, 기후온난화 등 글로벌 이슈 대응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자국 언론인 고토 겐지(後藤健二) 참수 사건을 계기로 대테러 대응에서 서방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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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은 전날 ‘미·일 공동비전 성명’에서 “양국은 아·태지역 평화와 안정의 코너스톤(주춧돌)인 ‘흔들리지 않는 동맹’의 토대 위에서 상호 호혜적인 경제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선진경제가 됐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소원해진 미·일관계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폄하하지만 양국 이해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과 관련해 코너스톤 일본이 린치핀(핵심축) 한국과 역사 문제로 갈등을 지속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도 과거사와 관련해 아베 총리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베 총리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면서 주변국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건 미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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