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주부 김모(39)씨는 최근 ‘잠이 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평일엔 5시간, 남편이 아이를 돌봐주는 주말엔 3~4시간 더 눈을 붙이지만 늘 멍하고 개운하지 않다. 김씨는 “아직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두 아이가 잠들기 시작하는 밤 9시까지 ‘육아전쟁’을 치르고, 그 후엔 밀린 집안일을 한다”면서 “사실상 24시간 아이와 집안일에 치이다 보니 잠깐씩 뒤척이면서 잘 때가 많고, 실컷 깊이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소연했다.
잠을 충분히 깊게, 많이 자지 못하는 수면장애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육아나 직장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30대 여성 환자가 많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면장애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분석 결과를 보면, 2012년 35만8000명이던 수면장애 환자는 2014년 41만5000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7.6% 증가했다. 같은 기간 관련 진료비도 2012년 360억원에서 2014년 463억원으로 2년만에 28.9% 늘었다. 매년 평균 13.5%씩 증가한 셈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여성환자는 24만7000명으로 남성(16만8000명)의 1.5배에 달했다. 여성 환자는 지난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전체 환자의 59.5%를 차지했다.
인구 10만명당 환자수를 보면 30대의 증가세가 가장 컸다. 30대는 495명 수준이던 인구 10만명당 진료인원이 2년새 591명으로 늘어 연평균 9.3%씩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30대 여성 환자는 연평균 10.4%씩 증가, 평균 증가율 6.4%보다 증가폭이 훨씬 컸다.
수면장애는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수면리듬이 흐트러진 상태, 충분히 잠을 자고도 낮 동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 등을 말한다.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 ▲수면호흡증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전문가들은 "자녀 양육, 직장 생활 등 30대 여성이 겪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수면이 불안정해져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30대 여성 환자의 증가세를 설명한다.
수면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한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들기 전에는 무리한 활동을 피하고 따뜻한 물로 가볍게 목욕하는 등 '수면환경 위생'을 지키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수면장애가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러시아 의과학 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심장병 전문의 발레리 가파로프 박사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영국의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과 사이언스 데일리가 지난 6월16일 보도했다.
심혈관질환 병력이 없는 성인 남성 657명(25~64세)을 대상으로 14년에 걸쳐 진행한 조사분석 결과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정상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 위험이 2배 이상, 뇌졸중 위험은 최고 4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가파로프 박사는 밝혔다.
그의 연구팀은 젱킨스 수면평가(Jenkins Sleep Scale)를 통해 수면의 질을 조사하고, 수면장애와 심혈관질환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장기간 분석했다.
젱킨스 수면평가는 ▲잠들기의 어려움 ▲수면 중 잠이 깨는 빈도 ▲수면의 지속성 ▲수면 후 피로감 ▲졸림의 정도를 종합 평가해 수면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분석 결과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제대로 잠을 자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 위험이 2~2.6배, 뇌졸중 위험은 1.5~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찰기간에 심근경색이 발생한 환자의 63%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수면장애가 흡연, 운동부족 못지않게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가파로프 박사는 설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닉에서 열린 유럽심혈관학술회의(EuroHeartCare)에서 발표됐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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