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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원 사라진 금강산 관광… 15번 방북 중 처음”

입력 : 2015-11-18 02:00:00 수정 : 2015-11-18 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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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남북종교인 모임 다녀온 박남수 천도교 교령 “남북이 언제까지 제자리걸음만 할 것입니까. 서로 힘을 합쳐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합니다.”

지난 9, 10일 금강산에서 열린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종교인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온 박남수(81) 천도교 교령의 말이다. 박 교령은 지난 16일 서울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나라 종교인 중 가장 많이 북한을 방문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1997년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북한동포들에게 옥수수 1만5000t을 보낼 때 천도교 대표로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15차례 이상 방북했다. 남북종교인 모임에 앞서 지난 10월30일에도 남북 공동 작업이 재개된 개성 만월대(滿月臺) 발굴 현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만월대는 고려 태조 왕건이 정무를 보며 거처로 삼았던 궁궐로, 청자와 건축장식물 등이 대거 발굴되고 있다.

박남수 천도교 교령이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방북 기간 중 느낀 북한의 변화상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과거 개성을 방문할 때는 북한이 개방을 꺼렸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개성을 자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어요.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금강산 남북종교인 만남에서도 감지됐다고 한다. 우선 구룡연과 삼일포 등을 관광하는데, ‘감시원’이 따라붙지 않았다. 박 교령은 자신의 북측 파트너인 윤정호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부위원장과 산행하는 동안 내내 둘이서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윤 부위원장 몸에 마이크를 부착했는지, 어느 곳에 CCTV를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북측 대표단을 만나보면 체제자랑을 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는 귀를 막는 등 레퍼토리가 뻔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북측이 대화의지가 더 강했어요. 그리고 무슨 제안을 하면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저들이 우리 당국을 인정한다는 말 아니겠어요.”

특히 조선천도교의 경우 과거 대행체제 때와는 달리 부위원장과 서기장 등 조직이 잘 정비돼 각자 자신감이 넘치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박 교령은 종교인 모임의 연설에서 “우리의 만남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나 깊이 들여다보면 멈춰 있는 성과다. 왼발을 떼면 오른발을 뗄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다음에 할 과제를 정하자”고 발언해 양측으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북한의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도 제 말에 맞장구를 쳐 주더군요.”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박 교령이 조심스럽게 내린 몇 가지 결론이 있다. 첫째는 북한의 통일연구가 유연했던 것에 반해 오히려 남한에서는 ‘상대가 바뀌어야 우리가 바뀐다’는 자세를 견지하며 얼어붙었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우리 뜻을 관철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북쪽이 원하는 사업을 헤아려 들어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인은 정치논리에 갇히지 말고 종교 고유의 시각으로 북쪽을 대하자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장점은 자유와 다양성인데, 이러한 무서운 힘을 살리지 못하고 저들을 좇아 우리 역시 경직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통일’이라는 화두는 ‘흡수’나 ‘연방제’ 등 상대방을 압박하는 말이어서 적절치 않고, 평화와 통합, 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정도라고 말했다. 통합이란 남북이 경제인끼리, 또는 종교인끼리 서로 교류하고 화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통합 과정을 거쳐 양측이 균형을 갖춘 상태에서 통일로 이행돼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에서는 종교가 허용이 안 되는데, 천도교가 종교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종교시설은 있지만 신앙은 없다. 조직화된 종교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북한이 유엔 가입 후 유엔에서 종교현황 조사가 나왔는데, 보여줄 신앙이 없자 천도교에서 행하는 천수봉전, 주문병송, 경전봉독 등 종교의식을 보여주고 위기를 모면했다.

현재 북한 천도교 정당인 청우당 당원이 1만5000명이고 천도교 신자는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천도교는 북한에 있는 4개 종단 중에 가장 먼저 생겼고, 수장의 지위도 가장 높다고 한다. 지금은 남한의 천도교 교세가 약해 7대 종단 중 대북 지원이 가장 약하지만, 통일이 되면 과거 한반도에서 300만명이라는 가장 많은 신자를 가졌을 때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령의 전망이다.

“3·1운동 하면 다들 기독교가 한 것으로 알고, 유관순 누나를 떠올리는데, 이것은 엄연한 역사왜곡입니다. 3·1운동은 천도교가 10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준비했던 것이고, 천도교인 모두가 전 재산을 내놨으며, 민족대표 33인 중에 동학혁명에 참가했던 접주가 8명이나 됩니다.”

박 교령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는 천도교가 주관하게 되며, 이미 준비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예산도 지원받기로 했고, 남북 합작으로 중국 지린(吉林)성 화전(樺甸)시에 있던 천도교 항일운동의 산실인 화성의숙(華成義塾)도 발굴 복원할 계획이다. 화성의숙은 최덕신 천도교 제7대 교령의 부친이자 독립운동가인 최동오 선생이 숙장을 맡아 독립투사를 길러냈던 곳으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당시 학생이었다는 설도 있다.

박 교령은 경남 남해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제29·30·31·32대 교령을 지낸 묵암 신용구 선생의 인도로 천도교에 몸담은 이래 종무원장, 종의원 의장 등 중앙총부 주요 교직을 역임하고 2013년 4월 3년 단임제의 교령이 됐다. 그의 인도로 부모와 8남매, 그 손자녀들까지 모두 천도교를 신앙하며 ‘도가완성(道家完成)’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항상 활동을 멈추지 않으려고 하고, 하루 4끼를 먹습니다. 그 한 끼는 한 시간의 운동이지요.”

이 때문일까. 도의 씨앗을 품을 당시의 14세 소년이 80 노객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젊다. 남북교류 때 그의 가슴이며 눈은 더욱 싱그러워진다.

글·사진=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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