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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유니폼 넘버, 3번의 주인공…베이브 루스, 말디니

입력 : 2015-11-22 08:00:00 수정 : 2015-11-22 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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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유니폼 넘버, 3번의 주인공>

유니폼 넘버 3번을 단 스포츠 스타 중 '야구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베이브 루스를 능가하는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의 영원한 스타라는 파울로 말디니 정도가 다른 종목을 배려한다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루스와 비교될 수 있다.

◇ 야구를 미국을 상징하는 스포츠로 끌어 올린 슈퍼스타, 베이브 루스

베이브 루스(1985년 2월 6일~1948년 8월 16일)의 본명은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George Herman Ruth, Jr)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22시즌을 뛰면서 통산 714개의 홈런을 때렸다.

특히 1918년부터 1934년까지 17시즌 동안 12번 홈런왕에 올랐고 2217타점, 통산타율 0.342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의 통산 홈런기록은 1974년 행크 에런에 의해 깨어졌지만 반발력이 좋지 않았던 공을 상대한 것과 더불어 웬만한 팀 전체 홈런수만큼 시원스럽게 담장밖으로 넘겨버리는 그의 홈런으로 수많은 미국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게 됐으며 어린이들은 그를 꿈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까지도 베이브 루스는 미국인들에게 영원한 우상이자 더립히면 안될 스타로 남아 있다.

▲ 베이브 루스의 위대함

1. 베이브 루스는 야구를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이자 미국의 문화로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1. 베이브 루스는 대공황기(1929년~1932년)를 전후해 미국인들에게 마음을 위안을 안겨준 희망봉이었다.

1. 베이브 루스로 인해 사람들은 야구를 다른 각도에서, 남녀노소 즐기게 됐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연아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고 '트리플 악셀'이라는 용어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고의 투수에서 최고의 홈런왕으로

베이브 루스는 투수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거쳐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들어갈 당시 조지 루스로 불렸던 베이브 루스는 봄 전지훈련과 시범경기를 거치면서 가공할 장타력과 피칭 솜씨로 선보여 기자들에 의해 '어린아이같은 거인'이라는 뜻의 애칭 베이브루스로 불리게 됐다.

루스는 1915년 18승, 1916년 23승, 1917년 24승을 기록한 당대 최고의 좌완투수 중 한명이 됐다.

루스는 1916년 월드시리즈에서 14이닝 1실점 완투승, 1918년에는 9이닝 완봉승, 8이닝 2실점으로 3경기 선발 등판해 31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했다.

루스는 월드시리즈 29이닝 무실점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도 갖고 있다 .

1918년 18승과 함께 95경기에서 11개의 홈런을 기록,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이어 1919년에는 주로 타자로 뛰면서 29개의 홈런으로 압도적인 홈런왕에 올랐다. 당시 홈런 29개는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의 전체 선수가 기록한 홈런과 맞먹을 정도였다.

연극 연출가이자 제작자였던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새로운 뮤지컬 제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루스를 양키스에 12만5000 달러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을 받고 넘겨버렸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이탈리아어로 어린아이)의 저주'에 빠져 2004년까지 86년간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아픔을 겪었다.

뉴욕 양키스에서 루스는 1920년 홈런 54개, 1927년 6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4번 타자 루 게릭과 더불어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중심타선을 형성했다 .

▲쓸쓸한 그의 뒷모습도 화제거리

1935년 베이브 루스는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방출되었고, 그해 6월 은퇴했다.

이듬해인 1936년 루스는 안타왕 타이콥, 강속구의 대명사 월터 존슨 등과 함께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다.

베이브 루스는 1948년 6월 13일 양키구장에서 열린 진정한 은퇴식을 통해 그의 등번호 3번이 영구결번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날 나다니엘 페인은 베이브 루스의 쓸쓸한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줌과 함께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 이탈리아 축구의 영원한 주장이자 3번 파올로 말디니

파올로 체사레 말디니(Paolo Cesare Maldini·1968년 6월 26일생)는 이탈리아 대표팀과 AC밀란의 왼쪽 풀백(이따금 센터백)을 담당했던 역대 최고 수비수 중 한명이다.

AC밀란 유니폼을 입고 902경기(33골)에 나섰으며 A매치 126회(7골),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세리에A리그 우승 7회의 기록을 갖고 있다.

말디니(186cm)는 영리한 경기운영과 상대 진영 깊숙히 한번에 찔러 넣는 롱패스롤 유명했다.

또 긴머리와 깨끗한 경기매너(선수생활 중 퇴장은 단 2회뿐)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2002월드컵 4강 주역인 홍명보가 말다니처럼 플레이하는 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을 정도였다.

파올로 말디니는 축구집안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도 AC밀란 주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밀란 감독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퍼거슨 감독도 파올로 말디니를 "꼭 잡고 싶은 선수"라고 탐을 냈으나 가문대대로 AC밀란 유니폼을 입어온 말디니와 그의 아버지를 설득하진 못했다.

파올로 말디니의 등번호 3번은 AC밀란에서 영구결번됐으며 그의 두아들 크리스티안과 다니엘도 밀란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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