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도로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호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현장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종익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시즌을 치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40대 초반인 이 감독이 시즌 초반 건강 문제로 물러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시선은 거의 없었다. 시즌 전부터 이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결국 이튿날 선수단이 이 감독을 보이콧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이 논란으로 도로공사 분위기는 쑥대밭이 됐다.
공교롭게도 논란이 불거진 날 도로공사는 대전에서 KGC인삼공사와의 맞대결을 펼쳤다. 경기를 앞둔 도로공사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 경기서 3-0 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경기 뒤 주장 정대영은 “지난 7월 청주 KOVO컵이 끝난 뒤부터 감독님과 소통이나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보이콧이나 항명은 아니다”라면서 “구단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수들은 이 감독과 좋은 방향으로 시즌을 치르자고 마음을 모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리 빨리 팀을 떠날 것이라 예상 못 했다”고 해명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선수단의 결속을 다져줬던 걸까. 아니면 ‘승리보다 더 좋은 보약이 없다’라는 사실을 이미 한 번 체험했기 때문일까. 도로공사는 22일 ‘디펜딩 챔피언’ IBK기업은행과의 맞대결서 올 시즌 들어 가장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3-0 완승을 거뒀다. 세 세트 모두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25-13으로 이길 만큼 그야말로 ‘압도’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 판이었다. 11개의 서브득점이 보여주듯 도로공사는 강서브로 IBK기업은행의 리시브진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고, 블로킹에서도 7-1로 완벽히 우위를 점했다. 범실마저 8-14로 더 적었다. 도로공사가 질래야 질 수 없는 경기였던 셈이다. 2연승을 달린 도로공사는 4승4패로 5할 승률을 회복했고, 승점 14로 GS칼텍스(승점 13)와 흥국생명(승점 12)을 제치고 단숨에 5위에서 3위로 점프했다.
더욱 반가운 것은 레프트 김미연의 급성장. 이날 김미연은 블로킹 3개 포함 14득점을 올리며 시크라(18점)과 공격을 이끌었다. 공격성공률도 58.82%에 달해 순도도 높았다. 지난 시즌 도로공사의 문정원은 강서브와 쏠쏠한 공격력으로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러나 문정원은 시즌을 앞두고 훈련 과정에서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문정원과 입단 동기인 김미연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양새다. 김미연은 지난 3년간 도로공사 외국인 선수로 활약한 니콜을 빗댄 별명인 ‘미콜’이라 불릴 정도로 빠른 팔 스윙과 탄력을 앞세운 공격력은 인정받았으나, 팀에 워낙 토종 레프트가 풍부해 그간 자리를 잡지 못했던 선수다. 오랜 기다림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시즌 초반 신임 사령탑의 아웃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선수단의 단단해진 결속력과 새 얼굴의 발굴로 극복해내고 있는 도로공사의 올 시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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