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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한국 호랑이의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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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11 21:33:54 수정 : 2015-12-11 21: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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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말살 당했던
민족영물 호랑이
영화 ‘대호’로
다시 깨어나
역사왜곡 일삼는
日에 준엄한 꾸짖음
서울미술관에서 대호(大虎) 민화전이 열리고 있다. 호랑이를 소재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친 조선시대 민중 예술가들의 기발하고도 멋스러운 30여점의 민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서는 때마침 개봉되는 영화 ‘대호’의 미공개 스틸 컷과 더불어 제작과정이 담긴 영상도 소개되고 있다. 미술과 영화의 색다른 콜라보레이션 전시라 하겠다. 박훈정 감독과 배우 최민식이 콤비를 이룬 영화의 배경은 1925년 일제강점기다. 조선 최고 명포수(최민식 분)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가 주인공이다.

일제강점기 때 호랑이는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려진 호랑이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일제는 해로운 동물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일본 사냥꾼들을 대거 동원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제는 한일강제병합 이전부터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등을 내세워 한반도를 토끼형상으로 몰아갔다. 와세다대학에서 지리역사학을 공부했던 최남선은 이에 반발해 1908년 ‘소년’지 창간호에 삽화로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도를 삽화로 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크고 강렬한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사실 호랑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사신도 중의 하나인 백호로 등장할 정도로 오랜 세월 영물로 여겨져 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치호랑이는 중국에서 시작된 그림이다. 호랑이는 부패한 관리, 까치는 민초를 상징했다. 급기야 조선에서는 권력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바보 호랑이’까지 등장한다. 이런 배경에는 부당한 권력을 조롱하는 백성들의 정치적 메시지가 깔려 있다. 요즘도 중국에선 부패관리 척결을 호랑이 사냥으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나쁜 기운을 쫓는 부적과 벽사 그림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호랑이가 다양한 의미로 은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대호’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백두산 호랑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쓴 작품이다. 그는 백두산 호랑이에 대해 “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 자 윤곽이 선명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듯 유연하고 가볍게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새의 비상에 가깝다. 풍성하게 자라날 갈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목덜미에는 또 다른 글자의 징후가 벌써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위대한’이라는 뜻의 ‘대(大)’라는 글자였다”고 묘사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가 동청철도(東淸鐵道·하얼빈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여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던 시기이자 한반도를 식민화한 일본이 만주침략을 본격화하던 때다. 작품 속에서 사냥꾼에 의한 백두산 호랑이 ‘왕(王)’의 죽음은 식민주의 침탈로 읽히거나,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은유로도 보인다.

민화 속 호랑이를 연구해 온 경주대 정병모 교수는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호랑이는 다양한 이미지로 우리와 희로애락을 나눴다”고 말한다. 그림 속에서 우리와 동일시된 우리의 분신 같은 호랑이가 등장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호랑이 그림은 우리의 또 다른 초상화일 수 있다.

영화 ‘대호’의 종착점은 ‘위대한 왕’과는 조금 다르다. 조선 최고 명포수와 일제의 사냥꾼에 쫓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서로 교감 속에 같이 최후를 맞는다. 일격을 날리고 맞은 명포수와 호랑이는 낭떠러지에 한몸이 되어 떨어지고 만다. 일제가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것들이 하얀 눈속에 덮인다. 비장미가 넘치는 영상미학이다. 일제가 빼앗을 수 없었던 조선의 정신성이 그 공간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한 폭의 조선 산수화의 여백도 겹쳐진다.

무엇보다도 조선백자의 하얀 얼굴을 보게 된다. 조선시대 문인 이정귀는 ‘월사집’에서 백자를 두고 ‘질이 하얀 것은 천성을 드러내는 것’(質白見天性)이라 했다. 하늘 이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백자의 텅빈 충만은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한 것(中虛足容物)이라 했다.

대호를 삼킨 눈 덮인 영화 속 ‘백자 풍경’이 편협된 역사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일본에 대한 강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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