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백영철칼럼] 검찰의 역발상, 가능할까

관련이슈 백영철 칼럼

입력 : 2016-01-19 19:42:20 수정 : 2016-01-19 21:41:0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수사 무능과 정치편향으로 위기 자초
고정관념·사회적 통념 뛰어넘어야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은 역발상의 대가였다. 고정관념과 사회적 통념, 관례 같은 굴레에서 자유로웠다. 6·25전쟁 때 부산 유엔군 묘지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했다. 방한한 유엔군 사절단의 묘지 방문 일정이 갑자기 잡히자 유엔군 사령부는 현대건설 정 회장에게 SOS를 쳤다. “잔디를 깔 수 없느냐?” 한겨울이어서 잔디를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정 회장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무조건 푸른색 풀밭으로 만들면 되겠느냐?” 다급했던 사령부가 수락하자 즉시 낙동강 근처의 보리밭으로 달려가 새싹이 나온 보리를 트럭 수십 대로 옮겨 심었다. 며칠 만에 유엔군 묘지는 푸른 빛으로 넘실댔다.

상식을 깨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했던 정 회장이 현실세계로 불려 나온 것은 김수남 검찰총장에 의해서다. 김 총장은 지난주 고검검사급 전·출입식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정주영식 발상의 전환을 검사들에게 요구했다. 김 총장이 사례로 든 것은 1970년대 건설업의 중동진출이었다. 정부가 중동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지 담당부서에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부정적인 보고만 올라왔으나 정 회장은 달랐다. 정 회장은 “낮에는 50도까지 올라가지만 밤에는 서늘하니까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된다. 물은 수송하면 되고 사막에 모래와 자갈이 널려 있어 별도로 가져갈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듣기만 해도 뭔가 될 것만 같다. 하지만 한편엔 기업인의 “하면 된다”는 구시대의 사고방식이 어른거린다. 정주영식 역발상은 양면성이 있다.

백영철 편집인
김 총장은 위기의 검찰조직을 추스르고 국민의 검찰로 재탄생시킬 책무를 안고 있다. 김 총장이 오래전 과거에 통용된 낡은 방식을 주입식으로 밀어붙이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하더라도 시곗바늘을 1950∼70년대로 돌려 불도저식 방식을 강요하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선의로 해석하면 검찰의 수사 무능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정치편향의 검찰조직을 바로잡기 위한 의도일 것으로 짐작해 본다.

검찰은 전례 없이 무기력하다. 수사 무능에다 정치편향에 대한 비난이 쌍끌이로 덮쳤다. 현 정부에서 이어진 채동욱·김진태 두 검찰수장은 국민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채 전 총장은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 앞에 “그런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뒤 초야에 묻혔다. 김 전 총장은 해외자원 개발비리와 포스코 수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서 솜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시선을 지우려면 알맹이 있는 수사결과라도 내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급기야 전 정권 실세들 계좌를 몰래 뒤진 혐의까지 받고 있다. 위신이 말이 아니다.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검찰을 장악하려고 한다. 박근혜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당하는 쪽에선 검찰독립이 머나먼 길이라고 분개해도 권력의 위치에선 검찰이 더욱 정권 친화적이기를 바란다. 법무부는 최근 인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을 몇 년째 ‘귀양살이’시키면서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알아채지 못한 서울시 간첩조작 수사팀을 복권시켰다. 이런 게 살아 있는 권력의 생생한 속성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대검중수부 폐지와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제한을 공약했다. 중수부는 2013년 4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2016년 1월 33개월 만에 부패범죄특별수사단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1997년에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사의 대통령비서실 파견을 금지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도 약속했지만 여전히 편법으로 살아 있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는 조심성마저 사라진 느낌을 준다. 청와대 파견우대가 말하는 것은 “청와대 말 잘 들으면 출세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업적 쌓기에 부심하는 5년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청와대가 검찰을 두 손에서 놓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만큼 어리석다.

김 총장이 취임한 지 50일 정도 됐다. 그간 많은 말을 했다. 인사청문회에선 “국민을 위해 검찰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며 “검찰은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기관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선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를 말했다. 법 집행에 어떤 성역도 안 된다는 의미다. “수사의 객관성, 공정성은 검찰의 존재이유이며 지켜야 할 절대가치”라는 말도 했다.

이제 말의 성찬은 지겹다.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말 못한 사람이 없었고 고사성어 쓰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말 대신 결의가 필요하다. 김수남호가 국민의 검찰로 회생하려면 고정관념을 깨는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탄자니아 동물원은 철창에 있던 백수의 왕 사자를 풀어 놓고 관람객을 철창차에 넣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같이 역할을 바꿔 생각하는 게 진정한 역발상이다. 검찰의 길은 자명하다. 권력에 한눈 팔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고 가면 되는 것이다. 김수남 총장이 검찰 위상을 바로 세우는 길로 갈지, 권력의 위세에 눌려 전임 총장의 전철을 밟을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백영철 편집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