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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이고 메고 지고 업고’ 가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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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15 20:10:36 수정 : 2016-02-15 2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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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한국인의 자서전’ 상상력의 보고
이제는 우리가 새 이야기 만들어 갈 때
설날, 어린 시절 명절이면 왠지 모르게 설레고 들뜨기만 했었다. 그런 게 어느 새 사라졌다. 설빔으로 받은 때때옷 차려입고 차례 지내고 세배하고 떡국 먹고 하며 싱글벙글하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기꺼이 즐거운 그런 마음 대신 묵중한 부담감만 늘어난 것은 왜일까. 하릴 없이 길 때문이야, 그렇게 탓해 본다. 명절 때만 되면 고속도로며 국도가 꽉 막힌다. 막힌 길 탓에 고향 가는 길은 아예 고행의 길이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왜 가는 거지. 뻔한 대답을 떠올리다가 불현듯 한국인이니까, 그런 생각에 미친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민족의 대이동을 놓고 그래도 아직은 한국적인 것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리라 하는 생각으로 이어가 본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은 누구인가.

수 년 전 나라 밖의 어느 대학에 머물 때였다. 그쪽 교수들과 토론하던 중, 나름대로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도 알 만한 서양의 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그 얘기는 우리도 잘 아니까 우리가 모르는 한국의, 동양의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얘기였겠지만 나는 뭔가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퇴계 이황의 이야기를 하고, 한국의 신화 이야기를 하니까 그제야 그들도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런 경험이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속 시원히 답할 자신이 없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의 세계는 잘 알아도, 정작 ‘삼국유사’ 이야기는 잘 모르는 이런 상황으로부터 나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신화학자 김열규가 선사한 책이 바로 ‘한국인의 자서전’이다. 상징의 바다에서 길어낸 질박한 한국인 이야기들이 넉넉하게 담겨 있다. 산과 물에서 태어난 한국의 첫 어머니 이야기부터, 탄생에 얽힌 사연이며, 된바람에 꿋꿋한 야생화처럼 혹은 장마 뒤에 크는 죽순처럼 자라는 성장담, 아리고 쓰린 사랑의 이야기, 사연 많은 결혼담, ‘이고 메고 지고 업고’ 가는 세상살이 이야기, 물어도 물어도, 빠져도 빠져도 끊임없는 물음으로 이어지는 죽음 이야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국인의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하다. 신비로우면서도 지혜롭고, 질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작가 이청준은 “토머스 불핀치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면, 한국 신화의 열쇠는 김열규 교수에게 있다”고 말했다.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한국인 이야기는 우리네 집단 무의식과 민족 심상의 정수를 가늠케 하는 상상력의 보물 창고다. 문화 콘텐츠의 풍성한 황금 가지다. 가요, 드라마에서 발원된 한류가 웹툰이나 웹드라마 등으로 다채로워지고 있다. 한류 열풍이 더 넓고 깊어지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는 물론 지금의 한국과 한국인의 풍경에 속상해하는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자서전’은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인 것 같다. 이야기의 바깥은 없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 이야기 바깥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당당한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궁리하는 이들에게 맵고 짠 한국인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차례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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