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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인간에 남은 마지막 방파제, 바둑 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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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03 21:05:47 수정 : 2016-03-03 21: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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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가장 큰 적은 인공지능이 아닌 자기 자신
한편으론 알파고를 인간으로 다른 한편으론 기계로 대해
인간 지성의 보루 지켜내길
세기의 대결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인간 대표인 이세돌 9단과 기계 대표인 알파고 간의 5번기(9∼15일)다. 대체적 소감은 2주 전 칼럼에서 약술했다. 이젠 훈수를 해야겠다. 요점은 간단하다.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한편으론 인간으로, 다른 한편으론 기계로 대하자는 것이다.

먼저, 왜 인간으로 대해야 하나. 1997년 IBM의 딥블루에 꺾인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가 반면교사 감이다. 미국 통계분석가 네이트 실버 등의 연구에 따르면 카스파로프는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딥블루의 압도적 기량에 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과대평가해 제풀에 주저앉았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이승현 논설위원
당시 6번기 승부의 분수령은 역설적이게도 카스파로프가 유일한 승점을 낚은 1국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1국 종국 후 카스파로프가 겁을 집어먹게 된 것이 화를 불렀다. 딥블루는 1국 때 정황상 마땅히 불러야 할 장군을 부르는 대신 어이없는 패착을 둔 뒤에 패배를 인정했다. 뭔 까닭이었을까. 카스파로프는 그날 밤 의문을 풀기 위해 패착을 거듭 검토했다. 그 결과 딥블루가 장군을 불렀어도 쌍방 최선으로 20수쯤 더 진행되면 딥블루가 외통수에 걸려 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수읽기가 이토록 심오하다니…. 카스파로프는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랐고, 그 충격은 사기 저하로 이어졌다. 카스파로프는 2국에서 완강히 버티면 비길 수 있었는데도 중도 포기했다. 재앙의 팡파르였다. 1승3무1패로 맞은 최종일, 카스파로프는 유난히 초췌한 모습으로 대국장에 등장했다. 결과는 당연히 패전.

훗날 밝혀진 요절복통할 사실이 있다. 챔피언의 심리적 동요를 부른 딥블루의 1국 패착은 실은 컴퓨터 버그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땅을 칠 일이다. 기계 고장의 신호를 놓고 뭔가 신묘한 게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다 지레 주눅 들고 만 결과였으니까. 인간은 때로 제 손으로 함정을 파고 제 발로 빠진다.

컴퓨터의 계산력은 완벽하다는 통념이 있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인간을 컴퓨터로 칭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인간 컴퓨터도, 기계 컴퓨터도 완벽하지 않다. 바둑이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얼마든지 버벅거릴 수 있다. 이세돌이 카스파로프의 우를 피하려면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통념을 내동댕이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기계 아닌 것으로 알파고를 대할 일이다. 그래서 인간이다. 하수 격파는 이세돌이 수도 없이 해왔다. 알파고를 인간 하수로 봐야 한다. 알파고의 도전을 쉽게 뿌리칠 첩경이다.

두 번째로, 왜 다른 한편으론 기계로 대해야 하나. 현대 정보이론 창시자 클로드 섀넌이 요약한 게임 컴퓨터의 장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컴퓨터는 감정적이지 않고 더는 손써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풀이 죽지 않는다”고 했다. 명쾌하다. 인공지능 알파고 또한 이렇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완벽히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라는 점을.

이세돌의 바둑은 창의적이고 호전적이다. 상대가 질릴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몰아붙이는 특징도 있다. 패자의 고통은 유난히 뼈아프다고 한다. 전의 상실까지 초래될 정도다. 독하지만 효율적인 기풍이다. 동물학에 나오는 ‘쪼기 서열(Pecking Order)’을 분명히 하는 부수효과부터 클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고통을 느끼지도, 풀이 죽지도 않는다. 전의 상실? 그런 것도 없다. 그런 기계를 상대로 헛심을 쓸 이유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쪼기 과정은 불확실성을 수반하기 쉽다는 점이다. 괜한 위험을 부를 수 있다.

어찌해야 하나. 초중반의 넓은 국면에서 일단 승기를 확보하면 알파고를 다시 기계로 봐야 한다. ‘신산’ 이창호 9단처럼 안정적 마무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반집이나 만방이나 이기는 것은 똑같다. 좀 살살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아가, 3승으로 족하다는 다소 느긋한 심정으로 5번기에 임해 심리적 중압감을 덜 필요도 있다.

체스와 퀴즈가 인공지능 쓰나미에 무너진 해변에 인간 지성을 지킬 방파제로 바둑만 외롭게 남았다. 마지막 방파제를 지킬 이세돌에게 가장 큰 적은 아마도 알파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 것이다. 심리적 부담일 것이다. 부디 이겨내기를.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번에도, 먼 훗날에도.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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