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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알파고가 던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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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7 21:54:42 수정 : 2016-03-18 01: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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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AI 공존 비롯한
‘세기의 대결’이 남긴 과제
집단지성으로 규명·타개하고
바둑계는 새바람 일으켜
기계의 진격 다시 가로막아야
지금 세상 군상은 두 부류로 대별된다. 인공지능(AI) 알파고의 4승 1패로 끝난 이세돌·알파고 5번기에 충격을 받은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다. 고백건대, 나는 전자다. 충격이 크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AI가 인간 직관을 넘보기 어려울 것이란 잘못된 믿음이 워낙 공고했던 탓이다.

‘컴퓨터’로 불리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일본 바둑계의 흘러간 스타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9단도 한때 ‘컴퓨터’로 불렸다. 이런 작명이 통하는 것은 기계는 완벽하다는 통속적 믿음이 넓게 깔려 있어서다. 이 역시 잘못된 믿음이다. 하지만 때론 잘못된 믿음에서 올바른 통찰이 나온다. 19세기 미국 추리소설의 대명사인 에드거 앨런 포가 바로 그렇게 올바른 통찰과 통렬한 결론을 끌어냈다.

이승현 논설위원
21세기에 구글의 알파고가 있다면 19세기에는 체스 두는 기계인형 ‘미캐니컬 터크’가 있었다. 터크는 나름 체스 고수였던 천재 전략가 나폴레옹을 꺾었고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도 물리쳤다. 군중은 열광했다. 마법처럼 보였을 테니 왜 안 그랬겠나. 터크는 1830년대엔 미국 대도시를 순회할 만큼 장기간 흥행가도를 달렸다.

터크 소동의 사기성을 꿰뚫어본 사람이 20대의 젊은 포였다. 추리는 정확했다. 체스 선수 빌헬름 슐룸베르거가 기계인형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하수들을 농락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들통났으니까. 포의 통찰은 어디서 나왔을까. 기계는 실수를 할 턱이 없다는 가정에서 도출됐다. 터크는 간헐적으로 실수를 했고, 지기도 했다. 포는 결국 터크 안에 누군가 숨어 있다는 결론을 냈다. 빙고! 포는 ‘기계는 완전→터크는 불완전→터크는 기계 아닌 인간’의 3단 논법으로 마법을 깬 것이다.

포가 이번 5번기를 봤다면 어떤 결론을 냈을까. 이세돌에 필적하는 인간 고수가 배후에 있는 사기극으로 봤기 십상이다. 알파고는 실수를 일삼았고 지기도 했으니까. 4국만이 아니라 2국과 5국도 이세돌이 제 컨디션으로 정상 대응했다면 알파고의 승국으로 돌아갔을지 여간 의문스럽지 않다.

물론 알파고가 뭔가 미흡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세상은 5번기에 충격을 받은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계속 나뉠 것이고,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구글 시가총액이 급속히 내려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승부는 되돌릴 수 없다. 인생사도 그렇고. 입맛이 씁쓸하다. 포의 어설픈 논법으로 알파고 마법을 깰 여지도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두번째의 ‘불완전’뿐이다. 이래서는 알파고 문제를 풀 최적의 해를 찾을 길이 없다.

이번 5번기는 여러 함의를 내포한 세기의 승부였다. AI의 현주소, 과학기술의 미래, 인간과 AI의 공존 등 여러 화두가 제시됐다. 집단지성을 활용한 규명과 타개가 필요한 난제들이다. 숙고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충격을 넘어 불안과 공포까지 번지는 것은 과도하다. 왜? 최악의 경우에 대처할 최후의 방책은 있는 까닭이다. 이미 인터넷에 떠도는 말에도 나왔다. 알파고는 두꺼비집을 무서워한다고. 우스갯소리에 그치지 않는다. AI는 엄청난 에너지 사용량이란 한계를 못 넘는 한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알파고 충격으로 가장 깊은 내상을 입은 쪽은 역시 프로 바둑계다. 하지만 위안을 삼으시라. 이세돌의 투혼과 분전으로 얻은 것도 결코 작지 않다. 알파고의 자유로운 착상을 보면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 바둑 혁명을 일굴 수 있는 힌트를 확보한 점이 무엇보다 크다. 새바람이 불 수 있다. 바둑이 세계적 관심사가 된 것도 여간 값지지 않다. AI를 능히 감당할 만하다는 자신감을 다지게 된 것도 수확이다. 이번에 거둔 여러 알찬 결실에 비하면 100만달러짜리 승부를 내준 것은 감내할 수 있는 허접한 비용에 불과하다. 어쩌면 체면을 깎인 것도 그렇고.

앞으로 어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그러니 부디 프로 바둑계가 절차탁마를 거듭해 AI 진격을 다시 가로막을 수 있기를. 구글은 그에 앞서 재대결에 응하기를. 그런데, 재대결이 이뤄진다 쳐도 인간 대표가 또 지면 어찌하나. 비장의 카드가 있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그 유명한 ‘평온을 위한 기도’다. 제각기 믿는 신 앞에서 이렇게 암송하면 된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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