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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맨부커상과 한국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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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5 20:26:40 수정 : 2016-03-25 21: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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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후보에
영국인이 한글 배워 번역
국내선 우리 문학 걱정 많지만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아
“‘채식주의자’는 데보라의 보고서와 샘플 번역본을 통해 막연하게 어림잡은 개략적 형태와 그림자만으로도 이 텍스트가 위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우리는 이것이 뼈까지 와 닿는, 어떠한 종류의 문학적 전기 충격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녀의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재단이 올해부터 새롭게 단장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작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올랐다. 이 작품을 출간한 영국 유명 문학출판사 포르토벨로북스 부편집자 카 브래들리는 지난해 ‘대산문화’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모두에 인용한 것처럼 ‘채식주의자’ 샘플 번역을 접하자마자 “뼈까지 와닿는 스파크가 튀었다”고 회고했다. 과연 이 작품은 올해 당당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오르한 파묵과 함께 영어로 번역 출간된 좋은 작품들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채식주의자’의 영국 출간 과정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한국문학 해외 출간과는 사뭇 달랐다. 영국 SOAS(The School for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박사 과정 학생인 데보라 스미스가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익혀 선택한 텍스트가 ‘채식주의자’였고 이 작품을 20여쪽 정도 번역해 보고서와 함께 포르토벨로북스에 보냈다. 이 샘플만으로도 전율한 편집자는 강한 출판 의욕을 보였고 대산문화재단이 출판비용을 지원했다. 현지의 네이티브스피커가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익혀 한국 문학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 3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쾌거인 셈이다. 1세대 한국문학 번역자가 현지 언어를 잘 아는 한국인이었다면, 2세대는 현지인과 한국인 공동번역이었고, 3세대는 이제 한국어를 자발적으로 공부한 현지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일본인이나, 일본인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번역하지 않듯이 한국 문학작품도 현지인이 그들의 욕구와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번역해내는 단계에 돌입한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보인다. 30여년에 걸쳐 한국문학 해외 번역 출간을 지원한 민관의 노력이 새로운 결실을 맺기 시작한 셈이다.

198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번역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시작된 이 사업은 1992년 설립된 민간 차원의 대산문화재단과 1996년 설립된 관 차원의 한국문학번역원(설립 당시 한국문학번역금고)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토대를 마련했다. 이 시점에서 지원 단체는 그들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출판계가 일본이나 프랑스 미국 작가의 작품들을 그들 나라의 지원을 받고 출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 선인세만 10억원을 훌쩍 넘겨 주면서 출간하는 현실이다.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이처럼 자연스러운 상업적인 시스템의 경쟁 상품으로 오르면서 번역 지원 방향이 달라지는 단계야말로 그동안 이루어진 지원의 최종 목적지일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소설가 한강은 지난주 폐막한 파리도서전 참가를 위해 출국하기 앞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책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 사실에 대해 “그렇다고 이미 써낸 작품이 달라질 리도 없고 저 또한 담담할 뿐”이라면서 “저에게 간절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그때그때 근근이 한 치 앞을 모르고 나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작품에 더욱 신경을 쓰는 자세야말로 작가의 몫일 터이지만 ‘채식주의자’ 번역 과정에서 한강이 데보라와 더불어 수시로 이메일을 영어로 교환하면서 의견을 나눈 과정은 이제 한국 작가에게도 글로벌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다음달이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는 155명에서 뽑은 한강을 포함한 13명에서 다시 6명으로 압축된다. 최종 수상작은 5월에 발표된다. 영어로 잘 번역된 작품들의 출판과 독서를 진작하기 위해 새롭게 개편된 이 상의 첫 수상작이 어떤 작품일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이 상의 수상 여부가 아니라 포르토벨로 편집자 브래들리의 지적처럼 이제 ‘채식주의자’처럼 해외에서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 것’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국 편집자에게 스파크를 일으킨 한국 문학, 안에서는 ‘개저씨 문학’이니 ‘문학권력’이니 말도 많지만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은 것 같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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