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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의마음건강]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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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03 21:22:44 수정 : 2016-06-16 08: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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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는 것보다 잘 푸는 게 건강에 좋아
만취는 금물… 가볍게 한잔하며 대화를
현진건이 1921년에 발표한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에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가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잘 묘사돼 있다. 매일 밤 만취돼 귀가하는 남편은 매일 술마시는 이유를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라고 말한다.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혼잣말을 한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화나고 억장이 무너지고 절망스러워 맨정신으로 있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외부환경에 의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나고 화를 푸는 과정의 연속일지 모른다. 삶의 정황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니 화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화를 참으라거나 화를 내지 말라고 가르치기보다는 화를 잘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처법일 것이다.

화(火)는 말 그대로 ‘불’이다. 화가 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불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가 말썽을 부리면 어머니가 “너 때문에 내 속이 타들어간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화가 나서, 즉 불이 나서 속이 타들어가는 것이다. 또 옛날에는 남편이 너무 속을 썩이면 부인이 “내 속을 뒤집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이미 새까맣게 타서 재가 돼 있을 거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애간장이 타들어간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화가 나면 마음속이 타들어간다.

한자 談(담) 자는 말씀을 뜻하는 言(언)과 불탄다는 뜻의 炎(염)으로 구성돼 있다. 炎은 火가 두 개나 있다. 한자에서는 같은 자를 두 개 쓰면 양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즉 ‘炎’은 평소에도 화가 나 있다는 뜻이다. 이 상태를 계속 놓아두면 결국 병에 걸리는데 이 병이 화병이다. 화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화가 날 때 즉시 풀어야 한다. 그리고 화를 푸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말로 푸는 것이라는 것을 동양의 지혜는 ‘談’자로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억압하는 문화에서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속 시원히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대화를 통한 화풀이가 어려우므로 다른 수단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 수단으로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술이다. 술을 마시면 평소에 억압하던 힘이 약해져서 자신의 속마음을 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적당한 음주는 보약이라고 한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고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이에 적당한 음주를 통해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감정을 대화를 하며 풀어내면 마음의 건강에 보약이 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화를 폭력적으로 표현하면 자신과 가족과 사회를 망치는 해악이 된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대화를 통해 건강하게 화를 풀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래서 선조들은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나 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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