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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이 듦이 두렵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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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08 22:32:46 수정 : 2016-04-08 22: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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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내 나이보다
여생 얼마나 될까 더 신경 쓰여
100세 시대 즐겁게 살려면
나이에 걸맞는 지혜가 필요
잘 살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다. 모두 주변에서 은퇴한 분의 사례를 건넸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다양했다. 하던 일을 계속 활발하게 하는 분, 전시·강연·콘서트 등 문화 활동에 마니아가 된 분, 그림·도자기·도예를 배워 전시회까지 하는 분, 전원생활을 시작해 텃밭을 가꾸는 분, 열심히 운동과 여행에 몰입하는 분 등 모습이 다양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꼭 드는 닮고 싶은 모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흐지부지 다른 주제로 대화가 옮겨 갔다.

가끔 노인 문제가 시급하다거나 노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면 잠시 불안해지면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뭐가 필요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을 미리 예상해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그러다가 얼마 전 이러한 고민을 덜어 줄 두 권의 책을 만났다. 미국 행동주의 심리학의 대가인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 박사의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로, 이 책에서 스키너는 “노인이 된 느낌을 알고 싶으면 뿌연 안경을 끼고, 귀를 솜으로 막고, 크고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장갑을 끼고 하루를 보내라”고 말한다. 아마 이보다 노인의 특징을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키너는 “변하는 감각기관에 걸맞게 환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스키너는 “노인이 되면 균형감각이 떨어져 가니 천천히 걷고 굽이 낮고 편한 신발을 신으며, 기억력이 감퇴해 잘 잊어버리니 매일의 일정을 만들고 중요한 것은 달력이나 수첩에 적으라”고 권한다. 그러니까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변화에 맞게 환경을 변화시키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의 “일흔으로 젊게 사는 것이 마흔으로 늙게 사는 것보다 즐겁고 희망적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이 듦이 덜 두려워졌다.

또 한 권은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이 책에서 가완디는 죽음의 준비에 대해 직선적인 제안을 한다. 가완디는 노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생리적인 변화를 겪는 것인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를 낱낱이 나열하고 있다. 특히 환자가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완화치료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는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삶의 마감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가완디는 “평온해지고 삶을 잘 마감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수용이다”라고 설명한다. 가완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여러 사람의 행보를 소개하며, 그들의 용기와 추진력에 감탄하고 그들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결과물에 감사해한다. 나는 이 책을 덮고 처음으로 나와 내 가족이 살고픈 노인시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아직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가장 인간답게 삶을 마감하고 싶은 곳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돼 감사하다.

언제부터인지 나 자신이 몇 살이 됐는지보다 내 생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조금씩 신체 변화도 느끼고 있고, 주변에서는 약 봉지가 늘어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소위 ‘100세 시대’로 큰 병이 없다면 남은 시간이 꽤 될 것 같다. 오래 사는 것이 즐거우려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잘 살려면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더 든다. “나이에 알맞은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나이에 가지는 온갖 불행을 면치 못한다”고 한 사상가 볼테르의 명언이 떠오른다.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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