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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유권자들이 총선에 냉담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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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2 18:03:55 수정 : 2016-04-12 22: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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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혐오 확산은 심각한 문제
민주주의 위기와 정치적 실패
정치참여와 대표성 보장 위해
선거제도·정당체계 개편해야
올바른 선택이 좋은 기회 낳아
10여년 전 워싱턴특파원을 지낼 때 미국 대선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 특정 정당·후보 지지 플래카드를 내건 집이 많았다. 한 동네 사는 백인 청년은 길에서 만났을 때 왜 민주당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 장시간 열변을 토했다. 정당 차원에서는 지역별 프라이머리(예비선거)나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린 학교 강당에서부터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정치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20대 총선 투표일을 맞았다. 미국 대선을 떠올린 이유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지만 분위기가 썰렁하다. 투표소에 가서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확인해야 할 유권자들은 냉담하기가 이를 데 없다.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들도, 정당들도 눈에 차지 않아 선택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우리 정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정치 혐오 탓이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들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정치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박완규 논설위원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수십년간 많은 나라가 자유선거를 도입해 민주주의 절정기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민주주의 퇴조기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저서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공적 논쟁은 설득기술에 능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쟁적 선거운동본부에 의해 운영되는 치밀하게 통제된 스펙터클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주어진 신호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선거 민주주의는 그 정치적 결과를 왜곡시키는 불평등에 더 취약해지고, 정체(政體)의 민주적 질은 떨어진다.” 우리나라 정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나아가 우리 정치는 정치적 실패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정치학자 라종일은 ‘사람과 정치’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흔한 ‘정치적 실패’의 경우는 공동체가 구성원에게 보편적인 이득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 즉 부분적 이해 혹은 특수한 이해가 공동체를 지배하게 되고, 이것이 구성원의 상당한 부분에게 불공평하다는 느낌이나 자기들이 그 공동체에 제대로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기술’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가 혐오 대상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 우리 정치에 대해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시민의 능동적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정당체계 개편을 준비할 때가 됐다. 2020년에는 새로운 제도로 21대 총선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번에 유권자들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후보와 정당의 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정치개혁 등 국정 현안을 충실히 다룰 능력이 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올바른 선택이 좋은 기회를 낳는 법이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략론’에서 “여론이란 것은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 미래의 예측까지 하는 수가 있다. 판단력에서도 민중의 그것은 의외로 정확하다. 두 가지 대립되는 의견을 나란히 제공해주면 여론은 거의 대부분 올바른 쪽의 편을 든다”고 했다. 근대 초기에 나온 이 말을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니 유권자들을 우습게 알고 선거 유세도 절실함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한다.

총선 후가 걱정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 소용돌이가 거세게 일 것이다. 투표에서 민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정치권 고질병인 이전투구 양상이 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직도 투표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한 구절을 전한다. “무엇을 한 후에 후회하는 편이,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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