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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닭똥과 닭고기 샐러드의 정치 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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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4 18:26:09 수정 : 2016-04-14 18: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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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민생 안중에 없이
공천권에만 열 올린 정치권
유권자는 분노의 바람으로
더 꼴불견인 새누리 응징해
여야가 이번 교훈 못 새기면
총알보다 강한 투표의 응징
기필코 다시 맛보게 될 것
어제 출근길에 대형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미처 철거되지 않아 대로변에 무심히 걸려 있던 선거 안내 플래카드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록이 거기에 있었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람들이 봤다면 꽉 막힌 속이 더 막혔을 것이다.

정치는 일차적으로 말의 예술이다. 언변의 달인 로널드 레이건이 지금껏 링컨과 함께 미국 시민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다. 링컨, 레이건만도 아니다. 심지어 전반적으론 깊은 인상을 못 남긴 미국의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의 어록도 곱씹을 것이 많다. 존슨은 한때 대선 패배자 신세였던 리처드 닉슨을 다정히 포옹한 적이 있다. 존슨의 백악관을 출입하던 기자가 “왜 포옹을 했느냐”고 물었다. 존슨의 대꾸가 걸작이다. “이봐요, 정치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닭똥이 닭고기 샐러드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이승현 논설위원
그렇다. 정치는 요술이기도 하다. 닭똥을 샐러드로 바꿔놓는 요술, 죽은 것도 되살리는 요술. 1960년대 존 F 케네디, 존슨 행정부 시절에 우습게만 보였던 닉슨은 결국 나중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닭똥에서 샐러드로 둔갑한 것이다. 미국 사례나 들여다볼 계제도 아니다. 4·13 총선에서도 정치 요술이 펼쳐졌으니까.

새누리당이 탈바꿈했다. 다만 방향은 정반대다. 샐러드에서 닭똥, 혹은 그것에 가까운 그 무엇으로 몰라보게 바뀌었다. ‘질 수 없는 게임’에서 여소야대의 날벼락을 맞았다. 원내 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어쩌면 갈구하던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거꾸로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지도 모른다. 입법권력을 송두리째 내주지 않으려면 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유낙하였다.

대한민국 총선은 어찌 판가름나나. 선거 좀 안다는 이들이 감초처럼 꺼내드는 답안지가 있다. 첫째 구도, 둘째 바람, 셋째 인물이란 답안지다. 첫손에 꼽히는 구도의 잣대로 보면 새누리당은 180석 이상 휩쓰는 압승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었다. 일여다야 구도만큼 우호적 구도가 따로 없으니 그렇게들 예단했다 해도 큰 무리일 수는 없다.

이젠 사후약방문이 쏟아진다. 야권 분열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변수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기조의 다채로운 해석들이다. 동의는 꺼려진다. 이번 구도에서 못 이긴 여당이라면 다른 어떤 구도에서도 이길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총선 구도의 틀을 새로 맞출 게 아니라 구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요인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뭔 요인일까. 바람이기 십상이다.

총선 과정을 훑어보자. 여야 모두 ‘진상’ 본색을 줄기차게 드러냈다. 민심과 민생은 안중에 없이 권력투쟁에만 열을 올린 탓이다. 결과적으로 ‘야대’ 훈장을 달게 된 야권도 그랬다. 친노 패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되돌아보기도 역겹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꼴불견이 더 심했다는 점이다. 국민에겐 전혀 진실하지 않아 보이는 ‘진박 감별사’들이 준동하더니 ‘유승민 솎아내기’, ‘옥새 파동’ 등 막장 연속극까지 틀어댔다. 그 연쇄적 추태가 큰 바람을 빚어낸 것이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국정철학·정책 등에 대한 국민 공감을 토대로 일어난 시원한 바람, 고마운 바람이 아니었다. 목불인견인 진상·갑질 짓거리에 대한 국민 분노를 발판으로 생성된 차갑고 무서운 바람이었다. 셋째 변수인 인물론은 그 여파에 묻혀 논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여당 몰락 참사가 발생할밖에.

초대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길거리에는 쓰레기만 수북이 쌓이는 법이다. 이번 총선 바람은 다행히 다르다. 교훈도 남겼다. 5000만 국민은 권선징악 드라마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번에 쓴맛을 본 새누리당은 깊이 새겨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남은 22개월을 그나마 소중히 쓰려면 분발할 일이다. 운 좋게 분노의 과녁에서 벗어난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겸허히 교훈을 수용해야 한다. 이번에 형성된 입법권력 지형도로 미루어 야권의 어깨가 외려 더 무거울 수도 있다.

정치 풍향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허투루 쓰는 조짐이 노출되면, 오만과 폭주의 기미가 나타나면 권선징악의 바람은 기필코 다시 불 것이다. 총알보다 강한 투표의 형식으로. 닭똥이 샐러드로 바뀌는 천변만화의 요술도 어김없이 펼쳐질 것이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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