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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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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5 20:32:46 수정 : 2016-04-15 20: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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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사랑받은 심쿵 로맨스 ‘태후’가 끝났지 말입니다
허황된 멜로 논란 있었지만
팍팍한 현실의 설움 풀어준 행복한 카타르시스 선물
멜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판타지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삼포세대(취업·연예·결혼을 포기하는 세대), 구조조정, 저성장 장기화, 고령화 진입 등 한국사회의 ‘현재’는 미세먼지만큼이나 막막하고 뿌옇기만 하다. 현실이 막막하고 지겨워질 때 우리는 TV를 튼다. TV는 ‘또 다른 세계’를 눈앞에 펼쳐준다. 이름하여 ‘드라마’.

매회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며 뜨거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막을 내렸다. 시청률 29%. ‘태양의 후예’가 갖는 한류의 경제적 효과는 3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27개국에 수출했다. 꺼져가던 한류를 재점화했다는 소식에 ‘태양의 후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거의 메가톤급 폭풍 같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재난 휴먼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명 ‘태·후’는 궁극적으로 로맨스다. 극중 주인공의 멜로는 ‘달달하기’만 하다. 시청자들의 심장을 그야말로 ‘쫄깃’하게 만들었다. ‘송중기 신드롬’은 한류의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드라마계에서는 이제 막장이 아닌 고퀄러티 선제작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달달한 멜로’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시선들이다. 이를테면 ‘역사사극’에서 역사적 팩트냐 아니냐 하는 논란, 수사극에서 사건해결이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계속돼 왔다.

그렇다면 ‘태양의 후예’는 어떠한가. 장르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멜로는 그야말로 여성 판타지의 완성이며 여성 나르시시즘의 극치다. 해서 멜로드라마를 보며 “아, 저건 말도 안돼” “완전 뻥”, 이렇게 그 개연성 제로를 비난할 수 없다. 멜로는 여성판타지를 완벽하게 투사시킨 주인공들이 나와 로맨스의 판타지를 완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태양의 후예’에서 납치된 애인을 구출하는 남주인공은 어떤 총탄세례에도 끄떡없이 살아남고, 대위를 모시기 위해 헬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절벽 끝에 몰린 자동차를 들어올리기도 하고 시공간 이동을 마음대로 하기도 한다. 신화적 영웅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태양의 후예’의 장면들이 여성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개연성을 비켜갔는지 이에 대한 네티즌의 지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멜로의 환상성은 여성 감상성을 극대화시켜 도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혐의를 받아 왔다. 그것은 곧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혐의로 이어졌다. 과도한 ‘여성적’ 감상성, 과장된 감정의 멜로는 ‘여성’이 갖는 ‘단순성’에 대한 비난과 뒤섞이곤 했다.

그러나 이 팍팍한 현실에서 그것이 설사 환상일지라도 환상에 취할 수 있는 1%의 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는 통풍창고 말이다. 현실 전복일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의 ‘도취’가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준다. 사랑이 갖는 ‘숭고함’이 남루한 현실을 극복하게 한다. 자아가 잠깐이라도 고양(高揚)되는 순간이다. 그것이 마약 같은 희망일지라도. 스크린 속 ‘송중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김수현’이 아니어도 괜찮다. 달짝지근한 ‘심쿵’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억압된 감정을 풀 수 있다. 멜로는 잃어버린 청춘이며 잊어버린 열정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다.

로맨스가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현실에 설움이 많다는 뜻이다. 독거노인과 독거청년, 취준생 100만명 시대, 열정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노동). 서러움과 함께 봄이 왔다. 어느새 바싹 마른 가지 끝에 연초록 잎이 솟아난다. 진다홍 꽃사과 꽃이 피어난다. 꽃이 피어 더욱 서러운 봄.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줄 로맨스가 필요하다. 판타지가 필요하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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