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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칼럼] 새롭게 되새겨 본 파우스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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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7 18:17:45 수정 : 2016-04-17 18: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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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독서토론회 가입
고전 통해 인간의 지혜 축적
스마트폰만 보는 세대에 경종
독서 빈곤은 지혜·동력의 빈곤
자발적 독서·토론 등불 밝혀야
반세기 전에 읽었던 ‘파우스트’를 다시 읽었다. 전체 줄거리는 기억에 남아 있지만 본문은 처음 보는 구절과 행간처럼 새로웠다. 이 책을 전에 정말 읽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푸르른 것은 저 생명의 나무’라는 경구를 되새기며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얼마 전 모 독서토론회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 중반 한국은 가난과 궁핍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간절했지만 경제적 발전을 위해 이를 유보해야 했고, 지적 열망은 팽배했지만 읽을 책은 찾기 어려웠다. 대학에 갓 입학한 필자는 어느 날 우연히 복도를 지나가다가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작은 모임을 보았고, 그 열띤 분위기에 반해 매주 그 모임에 참석했다. 이후 이 모임에 적극 참여했으며, 교수가 돼서도 꾸준히 나가게 됐다. 여기서 훌륭한 선후배를 만났고 그들의 도움으로 지적 성장을 했다. 전공을 불문하고 모여든 많은 학생이 밤늦도록 동서고금의 고전을 토론하며, 다양한 인간의 지혜를 축적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법을 배웠으며, 내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선배는 후배를 존중하며 학번으로 줄 세우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민주주의적 발상이 그곳에서 발효했는지도 모른다. 졸업 후 우리들의 모든 지적 편력은 이 독서회로부터 유래했다고 회고했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엄혹한 군부 독재시절에도 지속된 이 작은 모임은 한때 해체의 위기도 맞았으나 다시 이어져 창립 50주년을 맞아 선후배가 합동으로 토론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파우스트’를 선택했다. ‘파우스트’는 누구나 아는 고전이지만 이제 잘 읽지 않는 책이라는 정평이 나 있다. 여러 날 걸려 다시 읽어보니 파우스트의 고민은 오늘날 인간의 고민이기도 했다. 19세기 산업 자본주의가 난숙할 무렵의 인간의 고민은 21세기 디지털 시대 인간의 고민과 상통한다는 점을 새로이 발견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는 전혀 다른 인간이 아니다. 그 둘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두 가지 다른 속성의 인물형이다. 파우스트는 선인이고 메피스토는 악인인가. 아니다. 그것은 상투적인 대비이다. 파우스트는 이상주의자이고 메피스토는 현실주의자이다. 때로 파우스트의 대사가 공허하고 무책임함에 비해 메피스토의 대사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파우스트는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메피스토는 절망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파우스트는 끝없이 욕망하기 때문에 희망을 갖지만 메피스토는 절망하기 때문에 허무적이다. 두 사람의 내기는 누구도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 파우스트는 내기에는 졌지만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명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토로했다.

‘파우스트’ 제1부는 그레첸의 비극을 다루고, 제2부는 파우스트의 방황과 모색을 다룬다. 결국 파우스트는 인간의 온갖 쾌락을 맛보지만 마침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간척사업에 헌신하며 생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전부를 던진다. 당일 토론회에는 70대부터 20대 초반의 60여명이 네 시간 가까이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다. 초청연사였던 김모 교수는 “이렇게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독서 클럽의 박력, 그 탄탄한 지적 바탕에 찬사를 드립니다”라고 했다.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사는 세상에서 토론으로 축적된 시간의 귀중함이 우리를 아름답게 했다.

‘노력하는 한 인간은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대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파우스트의 고뇌가 알파고의 고뇌로 대치되고 있는 오늘에도 책읽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독서의 빈곤은 지혜의 빈곤이며 미래를 개척하는 동력의 빈곤이다.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인 독서와 토론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심오한 자아를 발견하고 디지털 시대의 정신적 빈곤을 극복하는 지혜의 등불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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