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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환철의법률이야기] 책임부담의 균형추 과실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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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9 21:30:57 수정 : 2016-04-19 21: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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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많은 교통사고 과실비율 정형화
손해 줄이려면 본인 주의의무 다해야
민법은 제396조(과실상계)에서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행위에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민법 제763조).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나 불법행위의 가해자는 당연히 채권자나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의 발생에 채권자나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채무자나 불법행위의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모두 배상하라고 하는 것은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법리에 반한다.

피해자가 신호를 무시하고 차도를 무단횡단하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한 때를 생각해 보면 과실상계의 법리를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가해자인 운전자도 전방주시를 태만히 한 잘못이 있지만 피해자도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무단횡단을 하지 않아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못한 잘못이 있다. 이에 사고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각자의 잘못만큼 부담하는 것이 옳다. 과실상계의 법리는 사고발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고발생에는 피해자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사고로 부상을 입은 후 치료를 게을리 해 상처를 악화시킨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때 악화된 상처의 치료비 모두를 가해자에게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민법은 손해배상에 과실상계제도를 두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책임부담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민법은 과실상계에서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참작비율은 정하고 있지 않다. 손해배상사건이 발생하는 사례는 다양할 것이므로,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과실상계비율을 미리 법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사건을 담당한 법원이 구체적인 사고경위에 비추어 당사자의 과실 정도를 탄력적으로 정하게 된다. 따라서 각종 손해배상사건에서 각 당사자의 과실비율을 결정하는 것이 큰 쟁점이 되며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기 상대방의 과실비율이 높게 인정되도록 노력하게 된다. 교통사고나 산재사고는 사고의 유형에 따른 판례가 많이 축적돼 과실비율이 대부분 정형화됐다. 교통사고의 경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비율을 산정해 시청자에게 제시하는 ‘몇 대 몇’이라는 TV 프로그램도 대체로 유사한 사고에서의 판례를 참조해 과실비율을 산정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과실상계와 관련해 흥미로운 판결을 선고했다. A는 공인중개사 소개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공인중개사는 아파트가 ‘남향’이어서 시세보다 5000만원을 더 주어야 한다고 해 A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아파트는 실제로는 북동향이었다. A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공인중개사의 과실을 60%, A의 과실을 40%로 판단했다. A가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고 아파트를 방문해 구조를 직접 확인했으므로 아파트가 남향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는 이유였다. 위 과실비율의 적정 여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모든 법률관계에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하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것임을 알려주는 판결이라고 하겠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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