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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이순신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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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6 22:05:39 수정 : 2016-04-26 22: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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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 국정 리더십 실종된 듯
현안 산적해도 긴장감 안 보여
나라·백성 먼저 생각한 충무공
바르고 정직했기에 신망 얻어
국난 극복의 길 되새길 때다
4·13 총선 후 국정 리더십이 실종된 듯하다. 예상치 못한 여소야대 구도의 후유증이 크겠지만, 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나도록 수습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모두 남 탓만 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경제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시간만 끌어온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등 떠밀려 시작되는 형국이다. 실업자는 속출하고 사회 양극화에 대한 국민 불만은 한계점에 달했다. 북한은 내달 초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에 이어 핵실험 준비에 몰입하고 있다. 국정 현안 어느 하나 아슬아슬하지 않은 게 없다. 그동안 꾹꾹 눌러둔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데 정부나 국회에선 긴장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걱정이 앞선다.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생각해 보니 나랏일이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자빠지듯 곤경에 처해 있는데, 나라 안에는 구제할 방법이 없는 듯싶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충무공 이순신이 1594년 9월3일 전투를 독려하는 어명을 받은 뒤에 쓴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전쟁 중에 써내려간 일기에는 바람 앞 등불 지경인 나라 걱정이 많다. 이듬해 7월1일에는 “홀로 수루 위에 기대어 나라의 형편을 생각해 보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대들보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구원할 기둥이 없으니 종묘와 사직이 끝내 어찌 될는지. 심사가 어지러워 하루 종일 뒤척거렸다”고 했다.

박완규 논설위원
백성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도 남달랐다.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노획한 식량과 옷을 나눠주고 살 곳을 마련해줬다. 피난민들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적에게 들키지 않게 잘 숨으라고 당부했다. 1594년 2월9일 고성 현감을 만났을 때의 일기에는 “백성들이 굶주릴 대로 굶주리다 서로 잡아먹는 참상에 대해 물었다. 백성들은 앞으로 어떻게 목숨을 보전하여 살아갈는지”라고 썼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에서 “백성들은 함대가 나아갈 때 울었고 돌아올 때 울었다. 백성들은 늘 울었다”고 표현했다. 버려진 백성들과 이순신은 하나였다. 백성들은 살길로 모이기 마련이다.

이순신은 성웅이다. 성웅의 사전적 의미는 ‘지덕(知德)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영웅’인데, 그는 이에 더해 숱한 난관을 뚫고 끝내 나라를 지켰다. 한직을 전전하다 1591년 47세의 나이에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가 됐고 이듬해 임진왜란 발발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지만 모함으로 백의종군하고 수군이 궤멸되자 원직 복귀해 제해권을 되찾았다. 20여회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고 1598년 노량 앞바다에서 철수하던 왜군을 수장시키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선조실록’에서 사관은 “이순신은 충성스럽고 용맹한 사람이었으며, 재능과 지략이 뛰어났다. 군기가 엄하면서도 군졸들을 사랑하니 모든 사람이 기꺼이 그를 따랐다”며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호남지방 사람들이 모두 통곡했다. 노파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했다. 훗날 정조는 직접 지은 이순신 신도비명(神道碑銘)에서 “우리 열조(烈祖·공훈이 큰 선조)가 중흥의 공을 이룰 수 있게 뒷받침한 것은 오직 이 충무공 한 사람의 힘이었다”며 “강한(江漢·장강과 한수)같이 깨끗한 영령, 일월(日月)과 그 빛을 함께 하리”라고 칭송했다.

내일이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권은 임진왜란 때의 조정을 빼닮았다. 과연 정치지도자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처지를 안쓰러워하는가. 일각에선 혹시 국민을 상대로 ‘배신의 정치’를 되뇌고 있는 건 아닌가.

나라의 갈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은 정의의 외길로 나아간 원칙주의자였고 바르고 정직했기에 동료와 부하, 백성의 신망을 받아 국난을 이겨냈다. 그를 본받아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원칙을 지키는 데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국정 각 분야에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현안들을 풀어나가야 할 때다. 정치력을 발휘해 국민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럴 형편이 못 되면 백의종군이라도 자임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이 간 길은 모든 정치지도자들의 초심 아니던가.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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