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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오월은 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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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9 19:06:15 수정 : 2016-04-29 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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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희생의 고단한 세월
이젠 홀로 되고 병든 부모님
100세 시대가 괜히 두려워져
혈연과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새삼 더 큰 의미로 다가와
만우절로 시작됐던 잔인한 사월이 가고 있다. 총선도, 4·16도, 4·19도, 중간고사도, 뭇꽃들의 만화방창을 뒤로하고, 이제 노동절을 필두로 오월이 시작될 것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오월은 명실상부한 가족의 달, 가정의 달이다.

이렇게 기념일이 많다는 건, 기념해야 할 존재나 관계가 얼마나 팍팍한 현실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 팍팍함의 허리에 포진해 있는 오십줄에게 오월은 오리무중이다. 허둥지둥이다. N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 꿈, 희망 등을 모두 포기한 세대)가 된 자녀들과는 어린이날의 풋풋한 설렘과 희망을 나눌 수 없다. 애틋하게 감사해야 할 스승도 많지 않다. 노력보다는 포기가 더 빠른 해결책임을 눈치챈 부부의 날도 패스. 천근만근의 오리무중 마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게 어버이날이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쉰세대 뒤풀이 단골 메뉴는 부모 얘기다. 이 화제의 마무리는 쉰세대의 병자랑과 웰다잉법으로 끝이 난다. 우리들 중 누가 얘기를 해도 대동소이에 역지사지다. 양가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은 독거 중이거나 이러저런 노환으로 투병 중이시다. 그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와 불행담은 꼬리를 잇곤 한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안도와, 너도 그러냐는 연대와, 이러저러할 수 있다는 모색과, 우리도 머지않았다는 근심과,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연민으로 점철된 기승전결이다.

100세 시대, 고령화, 노인문제, 노인충, 꼰대, 경로, 어버이 등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키워드들이다. 생명연장장치로 연명 중이거나, 치매 파킨슨 알츠하이머로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중풍 뇌졸중 뇌경색 후유증으로 운신이 불편하거나, 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누워만 있는 모습은 이제 집집마다 익숙한 풍경이 됐다. 몇 년 전 ‘죽음의 완성’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백년이나 이백년 후면 이백 살까지 산다는데/ 그러니까 백년이나 이백년 후면// 백이른살 된 당신 아들과 갓 태어난 당신 팔대손자 사이의/ 이 한없이 길고 한없이 지루한 생을/ 얼마나 오래오래 완성해야 한단 말인가.” 100세가 될 부모들이 두렵고 100세가 될 자신의 미래가 두려워진 것이다.

베이비붐세대의 막내인 지금의 쉰세대야말로 가족이라는 혈연과,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얽매인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최근 들어 가족에 관한 시를 몇 편 썼다. 요즘 들어 기력이 쇠해진 엄마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되는 둘째딸을 끝으로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피로감과 안도감에 더해 육남매를 키워낸 부모의 고단함이 물밀려왔던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김종삼, ‘엄마’)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래저래 부재하는 아버지 자리를 온몸으로 메웠던 우리들의 엄마는 우리들이 밟고 지나왔던 ‘죽지 않는 계단’이셨다.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박목월, ‘가정’) 우리들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따수운 밥과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저자와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고달픈 십 구문 반의 신발이셨다.

그런 엄마 아버지들이 이제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습니다”(나태주, ‘우리 아버지를 찾습니다’)의 흔하디흔한 서사의 주인공이 되셨다. 실은 내 엄마도 독거 중이고 시부모도 투병 중이시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단다. 쉰 살을 넘기면서부터 쏜살의 의미가 오리무중으로 엄습해오는 오월이다. TV에서는 ‘백세인생’이 흘러나온다. 가족이라는 혈연이 새삼 준엄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새삼 겨운 오월이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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