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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의마음건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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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1 21:22:40 수정 : 2016-06-16 08: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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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비밀은 없어… 스스로 밝혀야
부족함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 필요
삼국유사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귀가 유달리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왕의 의관을 만드는 복두장(?頭匠)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평생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목숨이 아까워 평생 참고 살다 죽게 돼서야 대나무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다”라고 소리 질렀다. 그 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소리가 나 순식간에 그 소문이 퍼져 나갔다. 동화로도 각색돼 어린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고 있는 이 이야기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 당사자나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을 ‘자기 개방’이라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자기 개방을 많이 하는 사람이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고 한다. 우리는 긍정적 내용이면 다른 사람의 핀잔을 받으면서까지 기꺼이 공개한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내용은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비밀을 지키는 데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필요한 여러 곳에 슬기롭게 배분해야만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정된 심리적 에너지를 비밀유지를 위해 사용한다면 당연히 꼭 필요한 곳에 쓸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묶인’ 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여러 곳에 골고루 에너지를 배분할 수 있다.

비밀은 오랫동안 지켜질 수 없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돼 있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한 언로가 마련돼 있는 개방된 사회에서는 비밀을 영원히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스스로 밝히는 것이 어떨까. 우리 모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부족한 점을 스스로 밝히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묶여 있던 에너지를 해방시켜 더 바람직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슬기롭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뷰티풀 마인드’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 프린스턴대 교수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내시 교수는 한평생 조현증(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한평생 치료를 받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신병자라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고 파견된 노벨위원회의 조사관을 만나는 장면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과 나오던 내시 교수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침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학생에게도 이분이 보입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그는 자신이 환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다.

자신의 약점은 감추기 급급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알량한 세태에,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존경스럽기까지 한 이 모순을 깨닫는 것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한성열 고려대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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