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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공직사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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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9 18:03:13 수정 : 2016-05-09 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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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의원이 남기는
4년간의 의정활동 경험
20대 국회 큰 자산 될 것
국회의원 고위공직자에
재직경험 보고서 의무화
후임자 활용케 해야
세계일보는 10여년 전 탐사보도 시리즈 ‘기록이 없는 나라’를 통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국가기록 관리 실태를 고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할 나라의 중요한 공공기록이 무관심으로 방치되거나 고의적으로 폐기되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보도 뒤 각성이 잇따르면서 국가기록 보존 조처가 잇따라 취해졌다. 노무현정부는 기록관리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승만 대통령에서 김대중 대통령까지 전직들이 남긴 대통령기록물은 33만건에 불과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825만여건을 남겼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경구다. 기록은 그저 쌓아두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활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기록이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를 보는 지혜의 창이 된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기록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김기홍 논설실장
중앙인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교수는 재직 3년간의 공직 생활을 꼼꼼히 기록해 ‘통의동 일기’란 책을 냈다. 매일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정부의 한 단면이라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고 경험한 관료세계를 일반인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일기를 썼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 가운데 재임 시절 얘기를 회고록 형식으로 낸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자기 자랑을 늘어놓거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기록은 후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수인계는 공직사회에서 중요하다. 업무지식 공유와 행정 영속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시행착오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정권교체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두어 대통령직 인수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행정기관장들의 인수인계는 허술하다. 전임자는 퇴임사 몇 마디 하고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전임자가 인계한 것이 없으니 후임자는 인수할 것이 없다.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업무보고를 받는 것이 전부다. 그런 후임자가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려면 1년쯤 걸리고, 업무를 알 만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거에서 떨어진 의원은 짐 정리를 보좌진에게 맡겨놓고 국회에는 나와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의정활동 소회를 담은 보도자료가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의정활동 경험을 담은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초선의원들이 처음 손에 쥐는 것은 입법활동 절차와 국회시설 이용, 국회사무처의 행정지원 사항 등을 담은 국회사무처 제공 국회종합안내서가 고작이다. 법안발의 절차, 의원 외교활동 등은 사무처 개최 초선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배워야 한다. 눈치 빠른 초선은 의원회관 곳곳에서 열리는 ‘봉숭아 학당’에서 중진의원들의 노하우 전수를 귀동냥할 수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당선자 특강에서 “정치를 하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밥 먹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고 했던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의정활동에 필요한 실력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닦는다. 그렇게 해서 의정활동에 내공이 생겼을 때쯤이면 임기 4년이 끝나간다.

19대 국회를 떠나는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밥값’을 하기 위해 4년간의 의정활동을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정무위에서 활동했던 각종 경험을 정리해 20대 국회 활동을 뒷받침할 자료와 노하우를 후임 의원들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4년간 정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와 질의, 소관부처별 쟁점법안들, 20대 국회에서 입법추진해야 할 법안들도 망라돼 있다. 의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기식 보고서’는 후임 의원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과 행정부 고위공직자들도 물러날 때 자신의 공직 경험을 자료로 남겨야 한다. 재임 동안 무엇을 했고,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후임자가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직 시 경험을 담은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김광웅 교수가 ‘통의동 일기’를 써내려갔던 마음처럼, 이런 우리의 노력이 언젠가는 ‘좋은 국회’ ‘바람직한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란 확신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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