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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미 대선과 한·미 정상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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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0 18:54:34 수정 : 2016-05-10 2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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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한·미 정상 성향 엇갈려
YS·클린턴, DJ·부시 엇박자
트럼프 낀 조합은 우려스러워
‘미국 우선주의’ 심각하게 여겨
고차방정식 수준 대책 세워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다. 김 대통령이 19살 아래의 미 대통령에게 정치 훈수를 두면서 말이 길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회담 후 측근들에게 “그가 내게 정치를 가르치려 든다”고 역정을 냈다. 국내 정권이 바뀌어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는 클린턴 대통령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학생처럼 공손히 앉아 그의 말을 경청했다. 고위 외교관이 한·미 정상외교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든 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반대 사례다. 찰스 프리처드 전 미 대북협상특사의 저서 ‘실패한 외교’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첫 전화통화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역설하자 부시 대통령은 손으로 전화기를 막고는 “이 자는 자기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캠프 데이비드의 첫 만남 때 만찬장에서 두 정상 부부가 서로 손잡고 기도할 만큼 죽이 맞았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의 시간’에서 “캠프 데이비드 골프 카트에서 시작된 부시와의 우정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고 했다.

박완규 논설위원
이처럼 정상들도 성향이 비슷하면 말이 잘 통한다. 현안에 대한 인식의 공통점을 찾기 쉬운 탓이다. 그런데 한·미 간에는 그런 만남이 엇갈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보수 성향 정당(새누리당과 그 전신, 미 공화당) 출신(김영삼·이명박·박근혜, 부시)끼리, 또는 진보 성향 정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미 민주당) 출신(김대중·노무현, 클린턴·버락 오바마)끼리 만나는 시기가 짧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1993∼1998년)는 클린턴 대통령(1993∼2001년)과 겹치는데 이때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김대중(1998∼2003년), 노무현 대통령(2003∼2008년)은 부시 대통령(2001∼2009년)과 임기가 겹친다. 햇볕정책을 추구한 김 대통령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본 부시 대통령은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웠고, 노 대통령의 자주외교는 양국 관계에 파열음을 냈다. 이어 임기가 겹치는 이명박(2008∼2013년), 박근혜 대통령(2013년~)과 오바마 대통령(2009년~ )은 이런저런 이유로 북핵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했고 북한은 핵무장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양국 정상의 조합으로 이뤄진 한·미관계 배열을 보면 갈등이 없던 시기가 거의 없다.

지금 미 대선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간 맞대결로 치러진다. 기행을 일삼는 부동산재벌 출신 트럼프가 뜻밖에도 선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내년에 우리는 주한미군 주둔비 전액 청구서를 받게 될지 모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미군이 주둔해 있지만 않다면 미국과는 사실상 상관없는 전쟁이다. … 미국은 한국의 군사적 무임승차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방위는 미국의 방위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트럼프의 말처럼 들린다. 실은 미 케이토연구소의 테드 카펜터, 더그 밴도 연구원이 2004년에 쓴 책의 한 구절이다. 원제는 ‘The Korean Conundrum(한국의 수수께끼)’이지만 국내 번역본 제목은 ‘한국과 이혼하라’다. 트럼프의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은 생뚱맞은 게 아니라 미 보수세력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해온 것이고 그 나름의 논리가 세워져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공약을 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외교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될지를 상상하다 보면 내년 한국 대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할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번에도 엇갈릴지 두고볼 일이다. 트럼프가 포함된 한·미 정상 조합은 어느 것이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북한이 7차 노동당대회에서 핵·경제 병진을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삼은 판국이다. 한·미 정상이 갈등관계에 있을 때 북핵 문제에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제 한·미관계를 다루는 일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러 시나리오별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미관계는 단순한 일차방정식 수준으로는 현안을 풀어나가기 어렵다. 난해한 고차방정식 수준의 예상문제와 답을 만들어 놔야 그때그때 현안에 대처할 수 있다. 외교관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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