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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그들은 무엇에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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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7 17:56:58 수정 : 2016-05-17 17: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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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정책 큰 차이 없는데
상대 진영에 감정 나빠져
유권자 극단화 현상에
트럼프 같은 이단아 나올 수도
유권자 정서 흐름 주목해야
데이터분석 웹사이트로 유명한 ‘FiveThirtyEight(538·미 선거인단 수)’의 로고는 여우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한 가지를 안다”는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대 필립 테틀록 교수는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여우 집단이 소소한 정보들을 수집하며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유형이라면, 고슴도치는 큰 원칙을 믿고 이를 밀어붙이는 유형이다. 테틀록 교수는 10여년의 연구 끝에 여우형 전문가가 고슴도치형에 비해 소련 붕괴와 같은 주요 사건을 더 잘 예측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538’을 만든 네이트 실버는 자신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여우의 원칙을 소개했다. 전형적인 여우형인 그는 2008, 2012년 대선 결과를 주별로 정확하게 맞혀 ‘족집게’로 불린다. 그런 그도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후보 확정을 예측하지 못했다. 못 맞힌 정도가 아니라 “그런 일은 결코 없다”고 장담까지 했다. 트럼프가 이달 초 사실상 공화당 후보 자격을 얻은 뒤 실버는 웹사이트에 ‘왜 공화당원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황정미 논설위원
그는 오판한 결정적 이유로 공화당원들이 공화당 정통 노선을 따르지 않는 인물을 후보로 뽑을 가능성을 간과한 점을 꼽았다. 이들이 트럼프와 정체성을 공유한 건 정통 보수의 가치나 정책이 아니라 이민자, 무슬림, 기성 정치 코드, 여성 등에 대한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여우처럼 신중하게 잡스런 소음 속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도 공화당원들의 정서 분석에는 실패한 셈이다.

유권자 정서는 여론조사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무슬림을 미워하십니까’ ‘여성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대 정당 지지자를 혐오합니까’ 같은 질문에 선뜻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은 많지 않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극단화하는 흐름을 잘 포착한 건 실버 같은 선거분석 전문가가 아니라,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성난 미국인들의 분노를 대신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떠들었다.

4·13 총선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여론조사의 예측 실패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조사 방식을 떠나 응답자의 정직성을 전제로 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 특정 정당에 대한 호감·비호감 정도를 계량화하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IT정치연구회 세미나에서 서울대 한규섭 교수(언론정보학과)가 발표한 지난 총선 온라인 패널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한 교수팀은 3000명 온라인 패널을 대상으로 정당에 대해 얼마나 따듯하게 느끼는지 측정하는 감정온도, 각 정당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기술한 형용사, 경쟁 정당 지지자에게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 정당의 이념 성향 평가를 조사했다. 이념 성향 평가에선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경쟁 정당에 대한 감정적 평가는 격차가 컸다고 한다. A당과 B당 지지자 간 이념적 차이는 별로 없는데 상대 정당에 대한 감정은 나빴다는 얘기다. 1차보다 2차 조사에서 감정적 격차는 더 벌어졌다.

온라인 공간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권자 정서가 양극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건 불안하다. 한 교수는 “유권자들 사이에 정책적 차이는 크지 않은데 상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은 커지는 양상”이라고 했다. 트럼프 현상을 비롯해 이런 흐름이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불만과 무관치 않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불만을 퍼붓는 대상이 경쟁 정당은 물론 부자, 이민자 또는 여성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금수저·흙수저론, 갑질 논란, 여성 비하·혐오를 뜻하는 ‘여혐’ 현상이 그런 분노의 일환 아닐까.

문제는 분노하는 유권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오히려 네 편, 내 편을 갈라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킨다. ‘상위 1%의 권력을 빼앗아 99%에 돌려주겠다’는 한국판 샌더스, ‘이민자를 쫓아내겠다’는 한국판 트럼프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총선 이후 변화를 보이지 않는 여의도 정치를 보면 비관적이다. 유권자들 분노는 쌓여갈 테고, 그게 어떤 식으로 터질지 알 수 없다. 누구도 트럼프 현상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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