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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미세먼지, 고급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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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6 21:05:14 수정 : 2016-05-26 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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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값 올리자는 환경부도
민생 핑계 삼는 경제 부처도
국민 건강 지키기엔 역부족
정치·경제 논리 더 다듬어
국민 공감 사는 답안 찾길
한쪽엔 정치 논리가, 다른 한쪽엔 경제 논리가 있다. 둘을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선 검투사로 간주하자. 누가 이길까. 정치 논리가 우세한 경향이 있다. 최저임금제가 좋은 예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최저임금제는 위험한 처방이다. 사회적 약자의 실업률을 높이는 탓이다. 정책 보호 대상이 맨 먼저 다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괜찮을 까닭이 없다. 전문가들도 그런 논리적 귀결에 압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가 쓴 ‘맨큐의 핵심경제학’ 5판에 따르면 미국 경제학자 동의율은 79%에 달한다. 한국 경제학자 동의율은? 같은 책의 통계로 80%다. 10명 중 8명 꼴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최저임금제를 철폐해야 하나. 질문이 바뀌면 대답은 달라진다. 경제학계에서조차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2006년 미국 설문조사에선 경제학자 47%가 폐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수는 최저임금제 유지나 강화를 선호했다. 최저임금제의 폐단을 인정하는 8명 중 3명 이상이 유지·강화를 원한다는 뜻이다. 앞뒤가 좀 안 맞는다. 왜 이런가. 맨큐는 실증 분석과 규범 분석의 차이로 설명한다. 경제 현실을 실증 분석하는 과학자로선 폐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정책 조언자 입장에선 가치 판단을 곁들여 규범적 분석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 논리가 그래서 득을 본다.

그제 열릴 예정이던 미세먼지 종합대책 회의가 취소됐다. 정책 엇박자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환경부는 경유값을 올리는 처방을 내놓은 반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서민층 타격’ 등의 이유로 난색을 보이는 것이 난기류를 불렀다. 환경부의 처방이 가격 통제라면 경제 부처의 반박 논거는 민생이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 셈이다. 난전이다. 정부가 이달 중 내놓겠다던 대책 발표도 지연될 공산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의구심이 든다. 저렇게 한가해도 되는지 하는 의구심이다.

한반도는 어제 또 미세먼지로 뒤덮였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중국에서 오염 물질이 유입된 데다 국내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겠다”고 했다. 오늘도 어제만큼 나쁠 것이라고 한다. 어제오늘만이 아니다. 거의 날마다 이 지경이다. 뜻밖의 연휴가 펼쳐진 5월 첫주에도 다들 미세먼지 때문에 가급적 외출을 삼가야 했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당국자들이 이런 국면에서 저렇게 여유만만할 수도 있는가. 조자룡의 헌 칼처럼 내놓은 정치·경제 논리의 수준은 설상가상이다. 실증 분석? 규범 분석?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경험칙과 달리 정치 논리의 우세를 점치기가 쉽지 않을 만큼 둘 다 가관이다.

민생을 방패막이로 삼은 정치 논리부터 보자. 이 논리가 ‘증세 불가’라는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맞닿아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더 코미디다. 지난해 담뱃값 인상 때 막대한 증세 효과에 혹해 냉큼 공식 입장을 저버렸던 것은 대체 뭔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는 담배와 달리 국민 개개인이 취사선택할 여지도 없다. 국민 건강을 지킨다면 이쪽이 훨씬 중차대한 것이다. 왜 담배 다르고 미세먼지 다른가. 변변찮은 논리 전개에 앞서 이에 대한 해명부터 나와야 한다.

경제 논리도 초라하긴 매한가지다. 우리 국민이 호흡하는 공기의 미세먼지 농도는 미국 등 선진국의 두 배 이상이다. 초미세먼지는 과거 관측자료가 없어 관련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먹히는지 알 길이 없다. 환경부의 직무유기 혐의가 여간 의심스럽지 않은 국면인 것이다. 이런 판국에 덜컥 경유값 인상 카드부터 내밀었다. 중국발 대기 오염원은 어찌할 것이고, 산업시설과 발전소 등에서 쏟아지는 ‘외부 불경제’ 요인은 어찌 제어할 것인가. 환경부의 카드에선 정작 필수적으로 담겨야 할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나.

모든 정책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도 다를 리 없다. 논리 대결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숙성된 논리가 필요하다. 정치 논리도, 경제 논리도 공들여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국민이 수긍할 수 있고, 심판 역할도 할 수 있다. 관련 부처가 그러는 대신 대통령의 ‘특단의 대책 마련’ 지시를 받든답시고 불쑥 3류 논리나 들이대면 5000만 국민은 더욱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가 겁나 고등어도 못 굽는 국민 처지를 헤아린다면 저럴 수는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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