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화산책] 한글을 더 풍요롭게…

관련이슈 문화산책

입력 : 2016-05-27 21:43:30 수정 : 2016-05-27 21:44: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채식주의자’ 맨 부커상 수상
한글 과학적 우수성 알린 쾌거
아직도 일본어 잔재 수두룩
민족의 숨결과 시각을 담아
우리글 새로 찾고 만들어가야
한국문학작품이 해외에서 공정함과 권위를 존중받는 문학상 수상작이 됐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 기쁨과 영광은 무엇보다 작가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가 못지않게 번역자에게도 그 몫이 돌아갔다. ‘맨 부커 인터내셔널’, 즉 그 상이 외국작가의 영어 번역 작품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상금 역시 작가와 번역자가 사이좋게 반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덧붙었다. BBC에 따르면, 이들 말고도 세종대왕 역시 상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가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가 거의 없는 것을 알고 혼자서 한글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물론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기본적인 지적 소양은 갖춘 데다, 뒤에 다시 대학원 과정에서 한국학으로 학위를 받긴 했지만 한국문학 번역가로서의 시작은 그러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었으면, 혼자 배워 불과 반년 만에 문학작품을 읽을 정도의 해독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 영국의 공영방송조차 놀라워한 것이다. 실제로 언어학자에 따르면, 한글은 엄밀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져, 만일 세계 공통어로 단 하나만을 써야 한다면 가장 먼저 그 후보에 오를 자격을 갖추었다고 한다. 자음과 모음,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한글의 과학적 명료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라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에 주어진 것이자, 동시에 한글에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한글이 자신의 매력과 가능성을 충분히 드러내 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구어로서의 한글은 단절 없이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왔지만, 문자로서의 한글은 불과 100년의 역사를 넘지 못한다. 1894년 갑오경장 개혁과 함께 백성의 언어로서 사용됐으나, 한일합방과 식민통치로 인한 단절을 고려하면 기껏해야 80년 안팎의 신출내기 언어인 것이다. 서양의 언어가 중세를 지나며 라틴어에서 벗어나 성경 번역과 함께 스스로를 만들어간 역사가 500여년을 헤아리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역사를 지녔을 뿐이다. 그래서 문자 운용체제로서의 한글은 과학적이고 뛰어나지만, 거기에 걸맞은 다양한 콘텐츠를 갖지 못한 것처럼, 실제로 우리의 문자생활이 풍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서양문명과 접촉하며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 일본은 그 결과 근대화에 성공하며 한때는 미국과 세계의 패권을 다툴 정도였다. 그 와중에 그들이 번역에 들인 노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가 쓰는 많은 근대적 개념어들은 일본인들이 한자를 빌려 만들어놓은 번역어가 대부분이다. 일본화시킨 그들의 근대는 그만큼 풍요롭다. 그에 비해 우리의 문자생활에는 아직 땀과 노력이 좀 모자란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숨결과 시각이 담긴 말을 찾고 만들어가는 일이다. 한 예로, 30년 전만 하더라도 ‘갓길’이란 말은 없었다. 대신 ‘노견’이란 용어가 있었다.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직역해 의미를 짐작할 것이다. 그 일본식 용어를 갓길이라는 우리말로 바꾸는 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소리내기도, 이해하기도 편한 우리말이 하나 늘어났다. 이처럼 문자로서의 한글을 가다듬은 사소한 시간의 역사가 더해져야만 우리말이 풍요해질 수 있다. 또 그만큼 우리의 삶과 정신의 풍요로 이어진다.

아이가 말을 배우며 성숙하듯 한 언어의 가능성은 다양한 것과의 접촉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말 번역의 중요함이 거기에 있다. 외국 것을 옮기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얻으며, 아울러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의 수상에 우쭐하며 일회성 행사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 외국작품의 우리말 번역이 애초의 외국어보다 더 높은 수준이 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