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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반기문, 기대와 오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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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31 22:01:49 수정 : 2016-05-31 2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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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시사 발언으로
관심 집중됐던 5박6일
‘충청대망론’ 불 지펴
기존 정치 문법으로
새 지도자 될 수 있나
‘반기문 바람’이 휩쓸고 간 여의도가 뒤숭숭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제 한국을 떠나면서 “오해가 없기 바란다”고 했지만 누구도 ‘오해’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반 총장은 5박6일 머무는 동안 많은 말을 남겼다. 모든 일정에 기자들이 몰렸다. 정치인의 일정은 메시지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고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10년째 맡고 있는 반 총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당초 비공개를 전제하긴 했지만 대선 후보 검증 토론으로 유명한 중진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임원진과 간담회를 가진 것부터 작심한 듯 비쳤다.

반 총장 방한은 13일 공식 발표될 때 이미 정가 화제로 떠올랐다. 임기 중 마지막 고국 방문, 유력 대선주자급 지지율,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와 여소야대 정국. 그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가 첫 일정인 언론 간담회에서 촉을 건드렸다.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나와 솔선수범하고,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간 유엔 총장을 했으니 기대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겠다. 내년 1월1일이면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 결심하고 필요하면 여러분께 조언을 구하겠다.” 

황정미 논설위원
외교관만큼 신중하게 말하는 훈련이 된 직종도 없다. 더욱이 그는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기름 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행사장마다 기자들이 쫓아가 ‘대망론’을 질문해도 “허, 허” 웃거나 “말씀드릴 상황이 아니다”고만 했다.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한 건 아니지만 출마를 지지하는 여론, 여권의 기대를 저버리진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의 방한 기간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의 대선후보 지지율(28.4%)은 다른 야권 후보들과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1위였다. 그의 간담회 발언에 지지층이 호응한 결과다.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1년여 전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지 안다. 중도 낙마한 인사들을 손에 꼽지 않더라도 역대 대선 과정은 늘 역동적이었다. 반 총장이 진짜 내년 1월에 대선 출마를 선언할지, 한다면 끝까지 완주할지 알 수 없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그보다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은 정치인은 드물다는 거다. 그가 여, 야, 중도층으로부터 고르게 지지를 받는 건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는 이유가 크다. 지난 4·13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를 보여 달라”며 양당체제를 깨고 제3당을 만들어낸 표심과 다를 바 없다.

정치권에선 반 총장의 5박6일이 잘 짜여진 각본 같았다고들 한다. 달리 말하면 기존의 ‘정치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선 그의 김종필 전 총리 자택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 방문 일정이 그렇다. 반 총장은 비공개로 만난 김 전 총리와 대선 관련 대화가 없었다고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30여분간의 독대 그 자체로 ‘충청 대망론’은 해석이 아니라 팩트가 됐다. 반 총장이 경북 안동에 머문 시간은 3시간여에 불과했지만 정치권은 ‘충청+TK(대구·경북) 연합론’으로 들썩였다. 이런 지역구도에 그가 언급한 ‘국민 통합’ 메시지가 흐려진 게 사실이다.

그가 방한 기간 만난 사람들은 행사 관계자들을 빼면 노신영, 이현재, 고건 전 총리 등 사회 원로급 인사들이었다. 반 총장과 각별한 인연의 노 전 총리가 만든 자리로 알려졌다. 개인 인연이 깊은 인사들과의 비공개 만찬이라 해도 ‘원로 멘토 그룹’처럼 비쳐지기 십상이다. 유엔 행사와 관련해 방한했다는 설명대로 유엔 기구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나 유엔 등 국제기구 활동에 관심 있는 청년층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반 총장은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성공한 ‘롤모델’로 꼽힌다. 대신 반 총장은 사회 주류 인사들만 두루 접촉했다.

반 총장은 고령에 대한 질문에 “지금 미국 대선 후보들도 70세, 76세”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고,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끝까지 힐러리 클린턴을 추적하는 건 그들이 기존 정치권과 다른 메시지를 던진 덕분이다.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 샌더스의 ‘99%의 혁명’이다. 내년 대선에 도전한다면 반 총장의 준비된 메시지는 뭘지 궁금하다. 이번 방한으로는 ‘왜 반기문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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