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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동네 유리창이 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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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2 21:52:45 수정 : 2016-06-02 21: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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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번 감방 들락거린 동네 깡패
우리 사회 ‘깨진 유리창’ 반영
강력범죄 발생 줄이려면
생활범죄에 치밀한 대응 필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 청량리 일대를 어슬렁거리는 동네 깡패 어모씨의 전과는 93범이다. 그의 나이는 환갑을 넘긴 62세였다. 스물둘에 처음 구속됐으니 한 해에 두세 번 교도소를 들락거린 셈이다.

93번째 범죄의 죄목은 폭행, 업무방해, 재물손괴였다. 그는 몇 달 전 술 냄새를 풍기면서 식당에 들어와 공짜로 술을 먹으려고 행패를 부렸다. 식당 주인에게 소주병을 던지고 종업원의 멱살을 잡았다. 교도소를 나온 지 보름 만의 일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어씨와 같은 동네 깡패의 범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살인, 강도, 성폭력처럼 사람의 생명이나 존엄과 별 연관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씨의 경우 영세 상인들을 괴롭힌 폭력 전과만 70건에 이른다. 전과기록에 오르지 않은 온갖 패악까지 포함하면 피해를 본 서민은 아마 수천을 헤아릴 터이다. 그런 범죄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범죄 예방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폭력, 사기와 같은 생활 범죄가 많고 재범률도 높다. 2014년 범죄통계를 보면 한 해에 발생한 폭력·사기만 58만448건이나 된다. 1분에 1건 이상 일어나는 셈이다. 재범자의 범죄(범죄 미상 제외)는 폭력이 10건 중 7건, 사기가 9건꼴이다. 사기의 경우 9범 이상이 저지른 범죄가 27.3%에 달했다. 어씨처럼 교도소를 다녀온 범죄자가 거의 교화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세간의 말처럼 범죄자들이 ‘큰집’에서 새로운 범죄 기술을 익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에선 자질구레한 생활 범죄의 발생 빈도가 매우 높다. 이웃 일본과 견주어 보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1인당 사기건수는 일본보다 110배나 많다.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범죄를 모는 1인당 무고건수는 일본의 500배를 웃돈다는 통계도 있다. 그마저 최근 6년 새 30% 넘게 늘었다는 소식이다. ‘거짓말 국가’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가 범죄 척결을 소리치고 있는데도 최근 끔찍한 범죄가 줄을 잇는 것은 생활 주변의 음습한 범죄환경 탓이 아닐까.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상습 범죄꾼들을 그냥 두고선 국민의 치안 불안 심리가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법치를 유린하는 일탈 행위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여기에 근거한 범죄학 이론이 ‘깨진 유리창이론’이다. 건물 주인이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건물 관리가 소홀하다는 느낌을 줘 절도와 같은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사소한 위반행위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미국 뉴욕시가 이 원칙에 따라 경범죄를 집중 단속해 2년 만에 할렘가의 범죄를 40%나 줄인 일이 있다.

몰론 처벌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 건물의 유리창이 깨졌다면 그 행위를 저지르는 무뢰한을 엄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순찰을 자주 돌고 가로등 불도 환하게 밝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범죄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도록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네 깡패의 상당수는 재활 의지가 떨어지는 만큼 형사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재범자에게 보호관찰관 등을 붙여서라도 다른 삶의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네 깡패 어씨도 “감방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면 되지 뭐”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범인들을 잡는 일에만 신경을 썼지, 그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데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전과 수십 범의 반복 범죄를 줄이려면 강력한 처벌과 재활 지원의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한쪽 바퀴로는 수레가 굴러갈 수 없다.

요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범죄인의 인권은 교도소 내 구타와 같은 비인권적인 행위를 없애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범죄인들에게 최고의 인권은 그들이 다시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93번이나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그에게 짓밟힌 수많은 민초들의 인권은 또 어떠한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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