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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 안의 곡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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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3 19:18:06 수정 : 2016-06-03 19: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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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소중한 게 뭔지 모르면서
남에게 분노를 들씌우는 세상
곡성은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고
마음에 의심을 품는가 라고
나는 아직 곡성(谷城)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곡성(哭聲)은 두 번 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곡성(曲猩)을 만난다. 이 ‘곡성’에 이르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소문과 풍문이다. 그곳에는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두 마리 개가 살고 있고, 무지와 무서움이라는 두 통의 무를 주식으로 먹고 산다. 편견과 선입견에 이웃한 의심과 불신, 교만과 확신의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게 인간이다. 그 감옥의 팔 할은 소문이나 풍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지가 무서움을 부르고 그로 인한 광기와 폭력이 내 안에 뒤틀린 성성이 곡성(曲猩)이라는 괴물을 키운다.

‘곡성’의 불편함과 공포를 지우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나는 ‘곡성’을 은유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은유는 인식의 도구이고 힘도 센 법. 은유 안에서는 귀신도 악마도 신도 하나의 기표나 하나의 표상일 뿐이다. ‘곡성’의 은유적 메시지처럼 ‘곡성’은 보는 대로 그리고 보는 만큼 있었다. 루머가 보였고 간간이 유머도 보였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그렇지. 어느 마을에나 외지인 하나쯤은 찾아들기 마련이고, 용하다는 무당이나 마을을 떠도는 정체불명의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죽기도 죽이기도 하고, 독버섯이나 금어초 등에 의한 중독 혹은 감염도 가능하다. 벼락이나 폭우, 정전이나 교통사고도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다. 사춘기를 시작하는 아이는 급작스레 거칠어지기도 한다. 무당이든 스님이든 사제든 그 무엇을 믿는 것은 자유다. 모두 자연현상이고 사람살이이다.

그렇게 ‘곡성’을 다시 보니 가장 멀쩡한 사람이 ‘외지인’이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식물도감, 춘화집, 가부키 가면, 사진, 제사도구 등은 그가 자연, 성(性), 예술, 종교를 아우르는 영적 능력이 탁월한 지성인임을 암시한다. 타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사고를 예의주시하면서 자신이 믿는 종교의식을 치르는 자이다. ‘일광’이라는 무당 역시 자기 직업에 충실한 사람이다. 무당은 굿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법. 사건사고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사진을 찍고 염탐하며, 잔망스런 미끼를 던지면서 소문을 생산해내야 한다. ‘무명’이라는 마을을 떠도는 오락가락하는 여자도 여기저기에 출몰해 이것저것을 보며 이말 저말을 듣는다. 그리고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전한다.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 지식, 지혜를 넘어서는 일이 다반사다. 남양주에서, 구의역에서, 수락산에서, 강남역에서 벌어지는 뉴스 그 이면에는 불가해한 일이 많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났지. 왜 하필 그 사람들이었지. ‘간뎅이가 쥐좆 같고 성격이 가시내 같은’ 종구 역시 묻는다. 왜 하필 내 딸이고, 내 가족이냐고. 왜, 왜, 왜?

일찍이 철학자가 일갈했다.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우리의 한 시인도 노래했다. 모든 광명을 의심하라고. 이때 회의와 의심은 바로 알고 바로 보기 위한 인식의 도구다. ‘곡성’에서, 희생의 제물이 된 사람도 의심을 했다. 종구와 그의 가족, 친구, 후배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객관적으로 의심하지 않았고 합리적으로 회의하지 않았다. 루머에서 비롯된 의심을 확신했을 뿐이다.

우리 안의 곡성이 그러하다. 타자에 대한 무지와 의심을 사실로 만들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실을 운명적인 악연으로 몰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헛것을 만들어 불가해한 자연이나 우연의 틈을 채우고, 자신의 화와 분노와 죄와 악을 타인에게 들씌우곤 한다. 자신을 비롯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해치는 일인지도 모르면서. ‘뭣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그런 불가해한 일을 악마나 귀신의 소행이라고 보는 건 그렇게 바라보는 ‘곡성’ 속 주인공의 시선이며 ‘곡성’을 보는 관객의 눈이다. 그렇게 보도록 ‘미끼’를 던져놓고 그 미끼를 덥석 무는 우리를 향해 ‘곡성’은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 성경에 의지해,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보고 있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느냐”, “어찌하여 두려워하고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라고.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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