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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수도에 잠긴 고2 학생들
구의역 비정규직은 1997년생
애꿎은 목숨 희생 반복되는
비정상 사회 바로잡지 않으면
그들의 분노는 어디로 향할까
우리 사회는 특정 시기의 세대를 ‘○○세대’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척박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구분법은 하나의 현상을 흑백논리로 단순화하고 과장해서 일부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쉬우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불편하지만 명쾌하다. 그 세대의 또래는 끈끈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끼면서 공감의 폭을 넓힌다.

대학 졸업 뒤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세대를 ‘IMF세대’라고 했다. 저임금노동에 시달리는 20∼3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었다.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청년 세대를 말하는 ‘삼포세대’가 새로 등장했다. 이 세 가지 말고도 인생의 더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N포세대’로 바뀌었다.

김기홍 논설실장
이들 세대 못지않게 삶의 무게를 온 몸으로 아프게 느끼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온 나라가 휘청거렸던 1997년에 태어났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부도의 고비는 가까스로 넘겼으나 기업의 연쇄부도와 대량해고, 장기화된 경기 악화, 사회공동체 갈등과 양극화 심화 등 IMF사태의 대가는 너무 컸다. 그 후폭풍을 출생과 동시에 경험하며 성장했고,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중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몇몇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스러져 갔다는 사실이다. 2년여 전 세월호 참사로 나이 열일곱의 학생들이 숨졌다. 또래는 동갑내기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그 여파로 수학여행의 추억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올해 대학 입학식에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주고받으며 2014년 4월16일을 기억했다. 그렇게 말 못할 아픔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을 ‘세월호 세대’라고 부른다.

상처투성이인 세월호 세대의 가슴을 또다시 무너지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기업 직원을 꿈꾸며 서울 구의역에서 혼자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97년생 열아홉살 청년 김모군이 숨졌다. 김군의 가방에 남아 있던 포장도 뜯지 못한 컵라면과 드라이버, 19살 비정규직의 비애를 세월호 세대들은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여기며 사고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김군 부모가 손을 잡고 아이를 먼저 보낸 슬픔을 나누고 있다. 세월호 세대와 그들의 가족이 함께 보듬어야 할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그렇게 자꾸 커지고 있다.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으니 그 상처에 머물지 말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막상 그들 앞에 서면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우리가 구의역 현장에서 본 건 추모 물결만이 아니다. ‘2인1조’ 안전매뉴얼을 껍데기로 만든 위험 업무의 저비용 외주화, 서울메트로의 위탁사업 갑질 계약, 스크린도어 용역업체를 서울메트로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장악하고 있는 ‘메피아’ 비리들이 있다. 안전시스템의 부재, 세월호 참사에서 똑똑히 보았던 그 적폐들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 대변혁을 다짐했어도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관행이란 허울을 쓰고 비정상이 횡행하고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기약이 없다. “청년들의 희생이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이 나라는 안전한 나라가 됩니까”하는 절규만 넘쳐날 뿐이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참사로 아이를 잃은 필드하키 전 국가대표 선수 김순덕씨는 정부의 사고처리 과정에 큰 상처를 받아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15년 뒤 세월호 참사를 보고 “저희 때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씨랜드 부모가 세월호 부모를, 세월호 부모가 김군 부모를 위로했듯이 김군 부모가 또 누군가의 부모를 위로하는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그들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쌓인 분노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몸처럼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여 웬만한 아픔에는 무감해지는 것도 걱정이지만 일시에 폭발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큰 문제다. 대한민국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대한민국을 떠나는 이민행렬, 안전장치가 없는 불량국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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