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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피해자 의식과 가해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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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0 22:08:32 수정 : 2016-06-20 22: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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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습 필요
가해자 입장서 반성할 때 미래 밝아져
일이 잘되면 내 덕으로 여기고, 잘못되면 남을 탓하기 쉽다. 이기적 유전자의 측면에서 인간을 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개인을 합리화해 그 존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어떤 원동력처럼 여겨진다. 만약 그런 사람만이 모여 있다면 세상은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어)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어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은 고작 150명 정도에게 공감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우리는 타인을 향한 공감을 위해 내 탓을 먼저 승인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작가 이청준은 그것을 ‘가해자 의식’으로 풀어보려 했다. 민족의 분단과 좌우 갈등의 문제를 다룬 ‘가해자의 얼굴’에서 그는 피해자 의식이 앞서면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펼친다. 자신을 피해자라 여기며 가해자를 원망하고 보상받기만을 바라는 사람만 있다면 해묵은 원한을 풀기 어렵다. 반면 의식의 방향을 바꿔 자신도 가해자임을 승인하고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앞세우면 화해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다. 상처와 한을 치유하고 행복과 평화의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해자 의식을 바탕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 사유였다.

이런 맥락에서 씌어진 ‘흰옷’은 인상적인 해한(解恨)의 서사다. 대립과 충돌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용서와 화해, 함께 아파하기, 대신 아파주기, 감싸 안기 등을 강조했던 것이 이청준의 문학 윤리가 잘 드러난 이 소설에서 작가는 해방기의 혼돈과 전쟁기의 폭력으로 일그러진 우리네 정신사를 바로 세우려는 예지를 보인다. 남도지방의 버꾸놀이가 전쟁기의 악몽을 거치면서 예전 같은 무한포용의 신명 기를 잃고 거친 쇳소리로 변해버린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이 허심탄회하게 어울릴 수 있었던 예전의 신명을 회복하기 위한 진혼을 시도한다. 소설에서 영매자(靈媒者)는 간절하게 축원한다. 이 땅에서 벌어진 부정하고 불순한 것을 씻어내고, 이 땅에서 사는 사람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둡고 더럽고 부정하고 욕된 생각을 모조리 깨끗이 씻어 달라고. 헛된 이념과 사상의 사슬, 대립과 미움과 원한과 복수의 사슬, 거짓과 속임수와 미망의 사슬을 끊어 달라고. 그렇게 해묵은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꿈을 펼쳐 보인다.

“망자들은 망자의 길을 가게 하고, 생자들은 제 생자다운 세월을 살게 하고…. 그리고 저 아침 풀잎 같은 고운 아이들에겐 저들에게 더 잘 맞는 저들의 노래 속에 소복보다 더 고운 옷을 입고 고운 춤을 추게 하고, 그래서 이쪽이고 저쪽이고 이제는 이 산하가 온통 저들의 행복스런 춤판이 되게 하고…. 저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소망이요, 꿈이니께. 저들이 이젠 이 땅의 내일의 모습이니께…. 그러니 참으로 고맙고 부끄럽구나. 그동안도 저들은 저렇듯 힘차고 곱게 자라주고 있었으니. 우리의 꿈은 옛날에 실패했으되, 그 꿈이 저들에게서 저렇듯 다시 스스로 내일의 문을 열어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져가고 있으니….”

가해자 의식을 바탕으로 반성할 때 소망스런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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