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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성윤리 불감증 사회

관련이슈 박정진의 청심청담

입력 : 2016-06-20 22:21:54 수정 : 2016-06-20 22: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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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정의, 폭력으로 정당화
우리 스스로 속이고 배반
도덕과 성의 변태는
잘못된 병적 현상이고 역설
소박하고 건강한 성이 아쉬워
배우 겸 가수인 박모씨가 룸살롱에서 벌였다고 하는 성폭행(?) 사건이 고소사건으로 비화하면서 가뜩이나 부정부패와 도덕불감증에 휩싸인 우리 사회가 설상가상으로 ‘성윤리’불감의 사회였음을 새삼 자각케 한다. 도덕과 성은 동떨어진 문제인 것 같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입장에 있다.

현재 한국의 부정부패는 법망을 피하면서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고, 성적 타락은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마치 당연한 것인 양, 불감의 상태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국가 정체성이 없는 사회에, 도덕과 성의 정체성에도 위기를 알리는 적색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인류 문화는 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성을 억압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가깝게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멀게는 종의 왕성한 번식과 잡종강세를 위한 생태학적 목적을 내장하고 있다. 특히 혼인할 배우자를 멀리서 구하는 외혼제(外婚制)라는 제도는 특히 여성의 교환과 재화 및 용역의 교류를 위한 지혜로 해석되고 있다.

농촌의 마을공동체나 유목민의 노마드처럼 작은 집단을 유지하며 생활하던 단순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성관계와 결혼 풍습을 벗어난 행위를 감행하기 어려웠다. 일탈행위를 한 구성원은 그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따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특히 여성의 성은 억압받는 게 당연시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도시문명사회 즉 복합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성생활은 점점 자유로워지고 상대적으로 여성의 성도 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피임약의 발명이 여성의 자유를 확대시켰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성관계 시 마지막 부담(임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과거에는 여성에게 순결이 생명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피임약은 인간의 영악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연을 극복하는 인간 과학기술의 승리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종교단체들은 최근까지도 피임약 사용을 금기시해왔지만 결국 피임약의 빗장을 풀고, 심지어 동성애자의 혼인까지 여러 선진 나라들이 허용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문화 현상을 볼 때 쉽게 선악의 문제로 넘어가서 상대를 단죄하고 독선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단죄나 독선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한 적은 없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부분의 인간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시절에는 사건이나 사태를 있는 대로 보아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 혹은 너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왜 그러한 문제가 일어났는가, 그 뿌리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뿌리를 따져보면 이상하게도 인간은 심층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지구의 인구는 65억명을 넘어 70억명에 육박하고 있고, 고도자본주의 사회를 구가하고 있는 인간은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 월등한 생산성과 함께 생산을 기록하고 있지만 인류의 부(富)는 5∼10%의 개인(부자)이 나머지 대다수(가난한 사람)보다 더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문제를 해결할 때 이성적·합리적으로 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도리어 도구적 이성이 문제이고, 무한대의 욕망은 또한 이성과 다른 것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성적이기 때문에 더 부정부패를 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더 지독한 성적 욕망에 시달린다고 볼 수도 있다.

오늘날 부정부패는 단순한 부정부패가 아니라 변태적인 부정부패이다. 자본주의 이익추구 사회에서는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별로 죄의식도 없고, 법망에 걸려든 사람들은 모두 재수 없는 사람에 불과한 때문으로 혐의자의 얼굴은 도리어 떳떳한 태도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스스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로 상대방에 침투되어 있다. 이를 두고 ‘선악을 넘어서’라는 표현을 한 철학자도 있다. 독선과 위선과 폭력으로 가득 찬 사회가 한국사회이다. 선과 정의가 폭력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배반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자연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 도가 넘쳐서 자연을 배반하고 말았다. 물질만능의 풍요 사회는 인간의 행복으로부터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는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은 그만큼 그러한 인구가 많고, 그러한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한 탓도 있겠지만 인류 문명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도대체 남녀가 혼인을 하여 후세를 낳을 수 없는 관계를 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소박한 도덕과 건강한 자연의 성이 그립다. 도덕과 성의 변태와 성 도착은 창조적 변형과는 다른, 잘못된 병적 변태이고 역설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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